2008년 7월 18일 오전 11시 쯤 서울 종로구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비공개 회의장. 이날 방통위원들에게 어떠한 사전 통보도 없이 긴급 상정된 안건은 신태섭 KBS 이사의 자격을 상실시키고 새 이사를 추천하는 것이었다.
최문순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현 강원지사)이 밝힌 위원회 속기록에 따르면 이경자 위원은 상임위원체제이고, 합의제정신이 중요한 위원회 회의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에 대해 "인격적으로 모욕 당하는 것같다"는 표현을 쓰며 절차와 운영의 비합리성을 강력히 비판했다. 결국 방통위는 아무리 긴급한 안건이라도 5인 위원간 내용을 공유하는 ‘긴급안건 상정절차에 관한 사항’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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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 방통위 전 부위원장(경희대 명예교수· 68세)은 당시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지난 3월 말 서울 광화문 한 음식점에서 만난 그는 기자의 질문에 "법에는 KBS이사 임명에 관한 절차는 명시하고 있지만 해임에 관한 것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고 말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이사 해임을 방통위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고 단 KBS가 이사 결원을 이유로 이사추천을 의뢰하면 그때는 방통위가 이사를 추천 할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또 만약 이같은 절차를 지키지 않는다면 방통위는 결정의 정당성을 방어하기 어려울 것이란 주장을 한 것으로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방통위는 신 이사 대신 강성철 교수를 추천했고, 새 이사로 충원된 KBS 이사회는 정연주 사장을 해임시켰다.
바로 이 결정은 4년이 지난 지금 KBS의 파업을 불러온 단초가 됐다. 더욱이 신 이사가 방통위와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방통위는 방송장악이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아담한 체구의 이경자 전 부위원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그는 30여년 동안 언론학자로 살면서 방송분야의 대표적인 연구개발(R&D)기관인 한국방송진흥원 원장을 역임했고, 이 명박정부 들어 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를 합친 ‘방송통신위원회’ 출범과 함께 야당 추천 위원으로 선임됐다.
시민단체 일각에선 그의 '전투력'을 문제삼기도 했지만, 2010년 3월 3년의 임기를 끝마칠 때까지 KBS 이사 자격상실의 건과 인터넷 실명제 강화 반대, 통신사 보조금 규제 (마케팅비 축소) 강화 등에 있어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일각의 문제제기에 그는 정책을 다루는 방통위원은 "투쟁이 아니라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합리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그는 “원칙론자들은 순간 순간에는 소수로 남을 지라도 길게 보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라며 “실을 바늘 구멍에 꿰기 어렵다고 해서 바늘허리에 매어 바느질 할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방통위 공무원은 "종편에 관심 있는 유력 언론사들에서 광고시장을 감안해 종합편성채널 채널 사업자 수를 1~2개로 정해야 한다는 여론 몰이를 할 당시, 이 부위원장은 인위적으로 숫자를 정하는 것은 특혜 시비등 사회적갈등을 부를 수 있고, 숫자를 제한하는 것으로 신규방송사들 생존의 책임을 정부가 자처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 할 수 있기 때문에 방통위는 심사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을 통과한 언론사 모두를 허가해야 한다고 했다"면서 “이 때문에 뜨거운 감자였던 종편선정이 방통위 정책 중 가장 잡음이 적게 됐다”고 평하기도 했다.
◇방통위 조직개편, 정치논리 치중 우려
이 전 부위원장은 미래를 위한 국가전략기구로 출범한 방통위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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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방통위는 방송과 통신의 기술발전 추세를 반영할 융합정책기구로 출범했는데, 현안 중심으로 대응하다 보니 방송정책을 맡았던 구방송위나 통신정책을 관할했던 구정통부를 합한 그 이상의 융합정책의 큰 원칙과 방향성을 제시하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며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1기 방통위는 시스템이 뿌리내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기도 했지만 그 것을 이뤄내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다"고 했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에서 섣부르게 방통위 해체를 언급하는 데 대해선 우려를 표시했다. 이 부위원장은 “방통위 출범까지는 우리사회에서도 오랜 논의가 있었고,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를 모델로 했는데, FCC의 역사는 80여년이 된다”면서 “FCC가 완벽했기 때문에 그 기간 지속돼 왔다기 보다는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이 축적되면서 좋은 제도로 정착하는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방통위 조직개편논의가 정치논리에 치중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방통위에 대한 조직개편 논의는 정치적인 측면 뿐 아니라 정책과 운영 부문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며 “평가는 일을 했던 공무원 사회, 언론, 학계 등의 의견과 자료 분석 등을 통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덧붙였다.
이경자 전 부위원장은 위원회 제도가 졸속으로 폐기되기보다는 발전적으로 정착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위원회에서 5명의 상임위원들이 토론하는 구조가 너무 빨리 변하는 방송통신분야를 책임질 수 없다는 시각에도 수긍할 부분이 있지만, 단일 이익을 대변하는 사적영역과는 달리 다양한 이해가 대립하고 충돌하는 공적 영역에서 사회갈등을 조정 관리 하는데 위원회 의사결정구조가 꼭 나쁜 것인가를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며 결국" 독임제 구조의 효율성과 위원회구조의 문제해결 능력간의 선택의 문제인 셈"이라고 말했다.
◇여성에 대한 편견 없애려면 `실력 쌓아라`
여성으로서 원칙을 중시하다보면 주위와 소통하기 힘들었던 적은 없을까.
그는 “의견이나 주장이 충돌 할 때 사안의 본질과 부수적인 것을 구분해 문제의 본질에 집중하고 동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며 소통의 출발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후배들에게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이겨내려면 무엇보다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에게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능력과 실력을 쌓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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