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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기재위는 이날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열어 재정준칙 도입을 골자로 한 국가재정법 개정안 등을 심의했지만,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기재위는 전날에도 경제재정소위를 열어 법안을 심사했지만, 재정준칙 도입 법안이 소위에 회부된 52개 심사 안건 중 후순위인 44번째로 밀리면서 논의조차 못했다.
재정준칙은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로 제한하고, 국가채무비율이 GDP의 60%를 초과하면 적자 폭을 2% 내로 유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같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지난해 9월 발의됐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하다가 4월 임시국회에서도 처리되지 못했다.
기획재정부는 여야 의원들의 지적 사항을 수용해 재정 적자 비율이 2%를 초과할 경우 세계잉여금 100%를 나랏빚을 갚는 데 투입하고, 시행시기도 내년 1월 이후로 수정했다. 국회 기재위 소속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시행시기나 세계잉여금 (사용 규모) 등 내용 관련된 사안은 안을 전부 다 만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재정준칙 통과를 위해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하고, 여론전에도 나섰다. 기재부는 지난 14일 자료를 배포하고 “재정준칙은 105개국에서 운용 중이고 선진국 33개국 중 우리나라만 도입하지 않고 있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만 도입경험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최근 국가채무 규모가 지속 증가하고 이자부담도 급증하는 상황에서 미래세대의 빚 부담을 막기 위해 준칙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국가채무 규모는 △2019년 723조2000억원 △2020년 846조6000억원 △2021년 970조7000억원을 기록하고 지난해 1067조7000억원으로 처음으로 1000조원대를 돌파했다. 기재부는 “재정준칙을 도입하지 않을 경우 2040년 생산가능인구 1인당 국가채무는 1억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나라곳간 사정도 녹록지 않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 들어 3월까지 관리재정수지는 54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정부가 예상한 올 한해 적자 전망치(58조2000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1분기까지만 적자규모가 이미 연간 적자 전망에 가까워질 만큼 나라 살림이 어렵다는 의미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재정적자 규모가 10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3년간 재정적자가 100조원 안팎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를 벗어난 상황에서 100조원대 적자를 다시 내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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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은 재정의 건전 운용에는 동의하지만, 재정준칙으로 인해 재정의 역할이 제한되는 건 반대하고 있다.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 열린 소위에서 “복지수요가 늘어나야 될 시기인데 재정준칙을 정해놓음으로써 더 어려운 게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최근 국가채무비율 증가 원인은 사실 코로나19 때문인데 너무 우려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정의당과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등 시민사회도 재정준칙 법제화가 복지와 사회서비스 삭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날 재정준칙 법제화 도입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혜영 의원은 “재정준칙이 글로벌 스탠더드라 해도 윤석열 정부와 만나면 무자비한 긴축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기재부 안팎에서는 재정준칙 법제화가 오는 22일 전체회의에서 통과되지 않을 경우 기한 없이 연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1년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가 재정을 건전화하는 내용의 법안에 적극성을 띌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처리 시급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정부 지출을 줄이고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재정준칙 도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내년도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해 당장 재정준칙 도입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면서 “연내 합의에 불확실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어 “올해 세금도 상당히 부족하고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재정준칙을 만들지 않으면 정부 지출 조정이 어렵고 결국 국가부채를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면서 “과도한 정부지출을 줄이기 위해 재정준칙은 반드시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