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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듯 부푼 여인, 색색의 부처·해골…'성난 도발'에 녹다

오현주 기자I 2018.07.16 00:12:00

예술의전당 '니키 드 생팔 전: 마즈다컬렉션'
어린시절 성적학대, 결혼실패 등 상처
페미니즘 얹은 분노·치유 예술로 표출
'사격회화' '나나' 시리즈 조각·회화 등
평생후원한 日 요코 소장품으로 127점

니키 드 생팔의 ‘그웬돌린’(1966/1990).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펼친 ‘니키 드 생팔 전: 마즈다컬렉션’에 나왔다. ‘나나’ 시리즈를 탄생시킨, 임신한 친구의 모습이란다. 터질 듯 부푼 배와 가슴에 원색의 발랄한 색채를 입혔다. ‘그웬돌린’은 그 친구의 딸 이름에서 따왔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우스꽝스럽게 부풀어 올라 있다. 터질 듯한 가슴과 엉덩이, 빵빵한 허벅지와 팔뚝, 또 산만한 배를 가진 여인들. 어디 몸매뿐인가. 화려한 패턴으로 알록달록 ‘장식’까지 씌운 수영복차림이다. ‘나나’란 이름을 가진 이들은 가만히 멈춰 있는 법이 없다. 팔을 쳐들고 다리를 뻗고 춤 삼매경에 흠씬 빠져 있다. 그냥 서 있기도 불편할 체구인데 가뿐이 물구나무도 세운다.

게다가 말이다. 난데없이 등장한 부처상이라니. 늘 보던 부처라 방심하기 십상이지만 이 역시 평범치 않다. 족히 3m 높이는 될 부처는 무엇보다 근육질 몸매를 자랑한다. 금빛 번쩍이는 민머리에서 시선을 내리면 달랑 외눈과 눈이 마주치는데. 화들짝 놀라는 것도 잠깐 이내 모자이크로 구획을 나눈 반짝이 의상에 마음을 뺏기게 된다. 두 손을 모으고 가부좌를 틀었으니 부처로 볼밖에, 외계생명체라고 우기면 그러자고 할 판이다.

니키 드 생팔의 ‘샘의 나나(백색의 춤추는 나나)’(1971/1992). ‘나나’ 시리즈가 그렇듯 비대칭과 불균형이 특징이다. 1m 남짓한, 얼굴도 없고 팔다리 길이도 다른 이 여인은 되레 홀가분한 듯 마냥 자유로워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프랑스 현대미술가 니키 드 생팔(1930~2002)의 일대기를 돌아본 대규모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니키 드 생팔 전: 마즈다컬렉션’이다. 30주년을 맞은 예술의전당이 그 기념전으로 서울 서초구 한가람미술관에 크게 판을 벌였다. 생팔이란 이름이 다소 생소하다면 대신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인근의 조각분수공원을 떠올리면 된다. 그 한가운데 자리잡은 형형색색의 ‘스트라빈스키분수’(1982∼1983)를 만든 이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건 ‘마즈다컬렉션’. 생팔에 빠져 그이의 작품만을 수집했다는 일본인 컬렉터 요코 마즈다 시즈에(1931∼2009)의 소장품으로 꾸린 전시다. 평생 모았다는 327점 중 127점을 옮겨왔다.

폴리에스테르 소재에 돌과 유리, 금박을 붙이고 색색으로 페인팅한 갖가지 조각상부터 종이에 찍어낸 실크스크린과 석판화, 잉크·색연필 드로잉, 세라믹 평면회화까지. 전시는 상상을 초월하는 다채로움을 늘어놓는다. 과연 이들 형상을 세상에 내놓은 이의 생각은 뭔가. 그저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부르면 되나. 아니면 ‘성난 도발’이라고 할까.

니키 드 생팔의 ‘일기-내 남자들’(1993) 중 일부. 종이에 실크스크린한 작품이다. 생팔은 상처 많은 순탄치 않은 과거사를 유머러스한 그림과 조각으로 치환하는 장기가 있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총 쏴대던 분노가 사랑스러운 여인 빚기까지

맞다. 의도한 게 있다. 기본 바탕은 페미니즘이다. 생팔은 자신의 모든 작품에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누릴 ‘자유’를 새기고 여성으로서 마땅히 꿈꿔야 할 ‘해방감’을 얹었다. 하지만 꿈꾼다고 이뤄질 세상이겠나. 그래서 들이받고 들추고 헤집고 내던졌다. 1960년대부터 본격화한 이같은 행보가 견고한 서구미술계에 적잖은 충격을 가한 건 물론이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생팔의 인생사는 순탄치 않았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받은 성적 학대, 실패한 결혼생활 등으로 인한 상처가 끊임없이 그이를 괴롭혔다고 했다. 미술은 스스로가 마련한 도피처이자 분노를 쏟아낸 대상이었던 셈이다.
니키 드 생팔의 ‘스웨덴 TV프로그램을 위한 사격회화’(1961)의 일부. 물감을 담은 철망을 숨긴 석고작품을 향해 총을 쏘는 이른바 ‘사격회화’ 퍼포먼스를 통해 만들어졌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니키 드 생팔의 ‘스웨덴 TV프로그램을 위한 사격회화’(1961)의 옆모습. 목판에 얹은 두께 10㎝는 넘길 석고페인팅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처음부터 ‘비대한 여인상’은 아니었다. 출발은 세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서였다. 물감을 담은 철망을 숨긴 석고작품을 향해 총을 쏘는 이른바 ‘사격회화’ 퍼포먼스. 목판에 두께 10㎝는 넘길 석고페인팅을 얹고 장총을 쏴댄 작품은 그대로 그림이 됐다. ‘스웨덴 TV프로그램을 위한 사격회화’(1961)가 그것. 이후 채색 없이 석고만으로 성모상·예수상·포도알·자동차 등 온갖 정물을 한 데 모은 ‘대성당’(1962), 목판에 페인팅으로 심장 뚫린 섬뜩한 여인상을 빚은 ‘붉은 마녀’(1963) 등이 차례로 ‘총을 맞았다’.

남성이 내리누르는 사회에 대한 반항, 사격은 그 시작에 불과했다. 남성들이 늘 원해온 미끈하고 조신한 ‘규격화한 여인상’에 반기를 든 작품이 연이어 터져 나왔으니. 1965년부터 출현한 ‘나나’ 시리즈다. 다만 그 방식이 ‘반전’인데. 남성 위주의 비정상적 욕망, 드러나지 않은 폭력성, 편파적 미의식에 방아쇠를 겨누던 손으로 빚어낸 ‘나나’들은 자못 사랑스럽기까지 했으니까. 비록 코끼리처럼 우람했지만 적어도 피를 흘리는 마녀는 아니었으니까. 거기다 ‘오방색’도 울고 갈 원색의 색감은 또 어떤가.

니키 드 생팔의 ‘거꾸로 서 있는 나나’(1967). 그냥 서 있기도 불편할 가로 128㎝ 세로188㎝의 거구를 물구나무 세웠다. 비대칭과 불균형이란 ‘나나’ 시리즈 특징은 골격뿐만 아니라 색채에서도 드러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니키 드 생팔의 ‘거꾸로 서 있는 나나’(1967)의 뒷모습. 그냥 서 있기도 불편할 가로 128㎝ 세로188㎝의 거구를 물구나무 세웠다. 비대칭과 불균형이란 ‘나나’ 시리즈 특징은 골격뿐만 아니라 색채에서도 드러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여자아이’란 뜻의 ‘나나’란 작품명을 가진 시리즈는 생팔의 한 친구가 임신한 모습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다소 탁한 색채의 소심한 ‘나나’(1965)와 ‘그윈’(1965∼1966)은 이내 생기발랄하고 과장된 몸짓으로 무장한 ‘거꾸로 서 있는 나나’(1967), ‘샘의 나나(백색의 춤추는 나나)’(1971/1992) 등으로 진화하는데. 친구의 딸 이름을 딴 ‘그웬돌린’(1966/ 1990)에선 생동감이 극에 달한다. 특징은 비대칭과 불균형. 얼굴도 없고 팔다리 길이도 다른 여인들은 되레 그게 홀가분한 듯 마냥 자유롭다.

그 틈에 얼굴 없는 ‘나나’와 정반대인 두상 하나가 눈에 띈다. 반은 하얗고 반은 검은, 눈 색깔도 다르고 표정도 어긋난 245㎝ 높이의 ‘거대한 얼굴’(1970)이다. 한 여성이 대조적인 두 개의 얼굴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형상화했다. 두상의 정점은 ‘해골’(2000)에서 찍었다. 두개골만 남긴 골격에 스테인드글라스·거울·돌·세라믹 등을 하나하나 붙여 120㎝짜리 원초적 얼굴을 빚어낸 거다.

니키 드 생팔의 ‘거대한 얼굴’(1970). 반은 하얗고 반은 검은, 눈 색깔도 다르고 표정도 어긋난 245㎝ 높이의 두상은 한 여성이 대조적인 두 얼굴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형상화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니키 드 생팔의 ‘해골’(2000). 골격을 갖춘 두개골에 스테인드글라스·거울·돌·세라믹 등을 정성껏 하나하나 붙여 120㎝짜리 원초적 얼굴을 빚어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두 여인의 우정이 함께 이룬 ‘가치’

전시는 생팔의 가치가 요코의 컬렉션에 빚져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일본서 식품유통업을 하는 사업가였다는 요코가 생팔의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건 1980년. 그이의 나이 49세였다. 우연히 들른 갤러리에서 처음 본 생팔의 판화 ‘연인에게 러브레터’가 인생을 바꿔놨다고 회고한다. “1960년대 니키가 쏜 총탄이 20년을 걸쳐 지구를 돌아 내 심장에 명중했다”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니. 그저 막연한 팬덤은 아니었던 듯하다. 한 점씩 모으며 목표도 다졌단다. 생팔의 미술관을 만들자는 것. 약속은 지켰다. 일본 도치기현에 ‘니키미술관’을 보란 듯 세워냈으니.

두 사람의 우정은 오고 간 500여통의 서한에 고스란히 남았다. 서로 만난 것도 여러 차례. 첫 상면은 1981년 요코가 파리로 날아가면서다. 1998년 요코를 찾아 일본을 처음 방문한 생팔은 영감이 끓어오르기도 했다는데, 그때 나온 작품이 바로 근육질의 ‘부처’(1999)다. 교토의 한 사원에서 접한 부처상이었단다.

니키 드 생팔의 ‘부처’(1999). 1998년 요코를 찾아 일본을 처음 방문한 생팔이 교토의 한 사원에서 본 부처상에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 3m의 부처는 색유리·세라믹의 화려한 모자이크를 입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생팔의 국내 단독전시는 12년 만이다.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관에 71점을 세우고 거는 회고전으로 한국미술계에 데뷔시켰다. 당시 전시주최는 프랑스였던 터라 이번 전시작과는 또 다른 전경이었다. 세상도 달라졌다. 한 여인의 주체할 수 없는 ‘치기’에 비중을 싣던 시각에 이젠 깊이가 들어찼다. 철학을 쌓은 세계가 읽히고, 치유를 시도한 세월이 보인다. 그렇다고 굳이 공감대를 맞추려 애쓸 필요는 없겠다. 어쭙잖은 해석과 평가가 몰입을 막는 법. ‘천재과’의 한 여성작가가 뽑아낸 무한한 창의성에 빠져 유쾌하게 무장해제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 전시는 9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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