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유난히 배앓이가 잦은 사람들이 있다. 수시로 찾아오는 복통에, 심할 땐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을 찾곤 한다. 이때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쉽게 떠올리지만, 최근 들어 크론병을 진단받는 이들이 늘고 있다.
크론병은 아직도 일반에 생소한 질병이다. 그나마 최근 몇몇 유명 연예인이 투병 사실을 공개하며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크론병은 궤양성대장염과 함께 대표적인 만성 염증성 장질환이다. 염증성 장질환은 유전, 개인의 면역반응, 장내 미생물의 조성, 환경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장(臟)에 발생하는 만성 염증성 질환으로 크게 크론병, 궤양성대장염으로 나뉜다.
크론병(Crohn’s disease)이란 이름은 1932년 미국 의사 버릴 버나드 크론(Burrill Bernard Crohn)이 처음 보고한 데서 유래했다. 앞글자를 따 CD라고도 부른다. 주로 서양에서 발병률이 높았지만 최근 식습관이 변화하면서 국내 발생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 많이 나타난다.
김유이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크론병을 포함한 염증성 장질환은 최근 10년간 국내 소아청소년에서 2.5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보고되는 등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며 “가장 중요한 원인은 식습관의 변화에 있다. 특히 크론병에 걸린 소아청소년의 경우 영양 흡수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저체중이나 저신장 등 성장 장애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10년간 2.1배 빠르게 늘어… 20대 이하 환자 절반 차지
국내 크론병 환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2023년) 국내에서 크론병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3만3238명으로 2013년 1만6138명에서 10년간 2.1배 늘었다. 연령대별로는 △20대가 31.2%로 가장 많았고 △30대 25.1% △40대 15.3% △10대 15.1% 순으로 20대 이하가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크론병의 대표적인 증상은 복통, 설사, 체중감소다. 이들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면 크론병을 의심할 수 있다. 이들 증상과 함께 혈변, 발열, 피로, 항문 주위 통증이나 진물, 잘 낫지 않는 치열, 구토, 구역, 구강 내 통증, 성장 지체, 빈혈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간혹 비슷한 증상의 궤양성대장염과 비교되지만 병변의 위치, 범위, 특징에서 차이가 있다. 궤양성대장염은 대장에만 발생하고 염증이 얕으며 연속적으로 분포하는 특징이 있다. 반면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지만 주로 소장과 대장에서 많이 발병하고, 염증이 깊으며 띄엄띄엄 분포한다.
김유이 교수는 “크론병 환자의 10%는 진단될 때, 20~30%까지도 진단 1년 이내에 구강, 피부, 관절, 간, 눈 등에 장외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며 “크론병의 장벽 전층 염증은 장의 섬유화와 협착을 일으켜 창자 막힘을 유발하거나 농루를 일으키고 미세한 장천공 또는 누공을 초래해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대표 증상은 복통 설사 체중감소… 면역체계 변화가 원인 추정
크론병의 발병 원인은 아직까지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다만 유전 인자, 모유수유 여부, 서구화된 식생활, 항생제 남용, 흡연, 약물, 스트레스 등 여러 환경⦁사회적 요인이 면역체계의 변화를 일으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이에 따라 임상 양상이 바뀐다. 특히 유전자 이상이 발견되는 크론병의 경우에는 아주 어린 나이에서 발병하고, 이때는 보통 예후가 매우 좋지 않은 편이다.
또 장내 미생물 환경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힌다. 장내 미생물은 우리 몸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부에서 들어온 해로운 물질을 방어하고, 우리 몸에서 합성하지 못하는 필요한 물질을 음식물로부터 합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내 미생물이 균형을 잃게 되면 장벽이 망가지고 유익균의 수가 줄면서 유해물질에 대한 보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돼 여러 가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최근 장내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장질환 외에도 당뇨, 비만, ADHD(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김 교수는 “크론병의 경우 장내 미생물의 변화로 인해 유익균은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해로운 균이 늘어나며 장내 미생물이 균형을 잃게 된다”면서 “이렇게 되면 장벽이 망가지고 장 투과성이 증가해 독성 물질 또는 해로운 균이 장으로 침투를 하게 되고,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치료는 약물치료 중심… 지속적 치료·관리하면 정상생활 가능
크론병이 의심되는 경우 여러 가지 혈청학적 검사와 장내 염증상태를 반영하는 대변 칼프로텍틴 검사, 세균 감염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대변 배양 검사를 포함한 대변검사를 진행한다. 이어 소장 침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MRI(자기공명영상촬영) 또는 캡슐 내시경을 시행하고, 대장내시경과 상부위장관내시경으로 점막을 관찰하고 조직 검사를 실시한다.
김유이 교수는 “크론병 진단을 위한 영상 검사는 소장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일반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 검사와는 차이가 있다”며 “소장은 평소에는 장의 내강이 부풀려져 있지 않고 붙어 있는데 소장에서 생기는 누공, 협착 등의 병변을 간접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MRI 검사 전에 조영제를 복용해 장내강을 부풀려 검사를 시행한다.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장의 좁아진 부분, 샛길, 장의 붓기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치료는 일반적으로 약물치료로 진행된다. 특히 소아청소년 크론병의 치료는 증상을 완화하고 성장을 최대한 잘하게 하는 것과 치료 약제의 독성을 최소화해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목표를 둔다. 치료는 시기에 따라 첫 진단 시 또는 악화가 된 활동기, 두 가지로 나뉜다. 활동기에는 증상이 감소한 상태인 관해(Remission, 寬解)를 유도하기 위한 관해 유도치료를 하게 된다. 소아는 성인과 다르게 경증, 중등증의 경우 영양소가 잘게 잘려진 음료를 필요한 칼로리만큼 8주간 섭취하는 완전경장영양요법(exclusive enteral nutrition)을 시행한다. 이를 통해 관해가 유도되면 그 관해를 유지하기 위해 질병의 상태에 따라 항염증제 또는 면역조절제 등의 약물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약물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경증, 중등증, 중증 3단계로 나눠 관해 유도치료, 관해 유지치료 약물로 각각 나뉜다. 일반적으로 관해를 유도하기 위해 완전경장영양을 하지만 처음부터 증상이 심한 중증이거나, 완전경장영양에 실패하거나 재발하는 경우에는 스테로이드, 생물학적제제를 사용해 관해를 유도한다. 이후에는 항염증제, 면역조절제, 생물학적제제로 관해 유지치료를 한다.
단 크론병에 처음 진단되면 약물의 단계를 계속 올리더라도 관해 유도를 반드시 해야 한다. 이후 유지치료를 하면서 질병이 악화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후에도 다시 관해를 유도하는 치료를 시행하고 관해가 유도된 후 다시 유지치료를 계획한다. 일반적으로 크론병이 지속적으로 활성 상태를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자주 재발하는 경우 협착 등의 합병증이 동반될 수 있다.
그는 “크론병의 경우 사춘기인 소아청소년기 아이들에게 많이 발생하다 보니 진단을 받게 되면 생소한 병명에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부담 등으로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님도 많이 당황하고 속상해 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족, 학교 선생님, 주변 친구 등이 함께 질환에 대해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소아청소년 크론병은 아직 원인이나 발병 기전이 밝혀져 있지 않아 특별한 예방법은 없다. 다만 완전 모유 수유, 건강한 식생활, 항생제 남용 자제 등으로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김유이 교수는 “원칙적으로 크론병은 현재까지 완치가 되는 질병은 아니지만, 지속적이고 철저한 치료와 관리로 정상에 가까운 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