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K팝 발표작들이 우리의 깊은 공감을 우려내기는 어렵다. 신곡이 마치 디지털 시대의 정보처럼 새로운 동안에만 가치를 보유하는 것이다. 디지털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이렇게 차갑다. 알고리즘, 기계적 프로세스, 파편화, 업데이트, 단기, 소멸, 삭제 등의 언어들이 즉각적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이런 냉혹 냉랭의 질서가 전부가 아님을 말해주는 구원의 천사가 있다. 그게 역주행이다. 지나간 노래를 망각으로 폐기처분하지 않고 새 생명을 얻게 해주는 디지털 시대의 ‘착한’ 반작용이라고 할까.
역작용이 실현되는 이유는 디지털 포화 속에서도 진정한 감동을 선별해내는 별개의 흐름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 서사, 감동은 잠재력을 내면에 보전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다시 그 힘을 펼쳐낸다. 데이식스가 그 수혜를 받았다. 데이터류의 노래가 아닌 데이식스 본인들 말대로 ‘삶의 배경음악’이었기 때문에, 이를테면 관조적 의미와 서사적 긴장이 저류했기에 네티즌들에 의해 다시 불려나온 것이다. 작년 역주행의 상징인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도 다를 바 없다. 이 곡이 수개월 지나 널리 퍼진 것은 대학축제 때의 라이브 영상을 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왜 우리가 이렇게 좋은 노래를 몰랐지?” 하는 일종의 자각에 의해 비롯됐다.
음악관계자들은 최신곡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극도의 쏠림 상황에서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역주행이라는 점에 일제히 동의한다. 오히려 지금의 디지털 시대가 과거보다 더 음악의 신구(新舊) 밸런스를 기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에는 라디오에서 오래 전 노래들이 흘러나오는 것 외에 음반으로 옛날 곡을 접하기는 어려웠다. 어느 정도의 수요가 축적되지 않으면 레코드로 찍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터치 하나로 저 옛날의 노래를 얼마든지 스트리밍할 수 있다.
역주행은 강화를 거듭할 것이다. 가까운 과거가 아닌 먼 과거시제의 곡들도 돌아올 소지는 충분하다. 아날로그의 인간미가 차가운 디지털 시대 속에서 따스한 감동을 부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작고한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 현철의 ‘내 마음 별과 같이’, 작곡가 남국인이 쓴 김승진의 ‘스잔’이 일각의 재조명을 받고 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출세작으로 발표 60년을 맞은 ‘동백아가씨’도 얼마든지 역주행 퍼레이드가 가능하다. 영화 ‘헤어질 결심’ 덕에 1967년 정훈희의 명곡 ‘안개’가 주목받지 않았던가.
발라드의 전설 조덕배는 지난 9월 13일 신곡 ‘아름다운 그대여’를 내놓고 활동재개를 신고했다. 그런데 같은 날 개봉한 영화 ‘베테랑 2’에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나의 옛날이야기’가 삽입돼 흐르는, 조덕배 말로 ‘기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당연히 ‘나의 옛날이야기’는 영화를 본 관객들의 청각을 유린했다. 그는 이를 ‘음악적 자아의 재탄생’으로 일컬었다. 영화, 드라마, 게임, 틱톡, 쇼츠, 릴스 그 어떤 미디어를 통하든 음원 역주행이 K팝 자아의 재탄생, 세계관의 재구성으로 이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