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스토킹 피해자 보호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한다. 피의자는 신당역 역무원인 피해자를 3년여간 스토킹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에 피해자를 살해했다. 피의자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누린 덕분에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 그 대가를 피해자가 생명을 잃는 것으로 치른 셈이니 이보다 더 억울한 죽음은 없을 것이다.
피해자는 지난해 10월 이후 두 차례 각각 불법촬영과 스토킹을 이유로 피의자를 고소했다. 첫 번째 고소 때 경찰이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기각했다. 두 번째 고소 때는 경찰이 구속영장을 아예 청구하지 않았다. 같은 사건으로 취급될 테니 청구해봤자 또 기각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경찰은 피의자의 피해자 접근을 막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공권력의 보호를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피의자가 반의사불벌죄를 적용받으려고 피해자에게 합의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보복범행을 저질렀다.
국민적 분노가 들끓자 법무부와 검찰, 경찰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16일 대검찰청에 ‘스토킹 범죄에 대한 엄정 대응’을 지시했다. 법무부는 스토킹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폐지하고 가해자 위치추적제를 도입하기 위해 스토킹처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같은 날 취임한 이원석 검찰총장은 전국 스토킹 전담 검사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스토킹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찰 지휘부 워크숍 도중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가해자 유치장 유치 등 가능한 조치를 최대한 실행하고 현장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한 법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 모든 대책이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사회 각계에서 스토킹 피해자 보호의 허점을 지적하며 제안해온 것들이다. 관련 부처들의 움직임은 오히려 뒷북 대응에 가깝다. 국회에는 스토킹 범죄 처벌 강화를 위한 법안도 여러 건 발의돼 있다. 문제는 속도와 의지다. 정부와 국회는 하루라도 빨리 법령 개정과 제도 개선을 서둘러 억울한 피해자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