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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빚 탕감' 정책 실효성 거두려면

박종오 기자I 2018.08.23 05:00:00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금융위원회가 22일 ‘장기 소액 연체자 지원 사업’의 지원 신청 접수 기간을 내년 2월 말까지 6개월 더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정책 홍보도 강화하기로 했다. 당초 접수 기간은 올해 2월부터 이달 말까지였다. 뒤늦게나마 잘한 결정이다. 이런 제도가 있는 줄조차 몰라서 신청하지 못한 저소득 채무자가 많고 그 결과 현재까지 누적 신청자도 4만여 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위가 ‘한시적 대책’이라던 이 사업의 신청 기간을 연장한 것이 더 많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순 있다. 이건 역대 정권마다 경쟁적으로 ‘신용 대사면’ 성격의 채무 감면 정책을 대통령 공약으로 내놓고 성과 지표에 목맸던 탓도 있다. 하지만 장기 연체자 지원 사업의 대상인 1000만원 이하 원금을 10년 넘게 갚지 못한 채무자를 그대로 방치했을 때의 사회적 비용도 따져봐야 한다. 여론 비판을 의식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채무 불이행자(신용 불량자)에게까지 계속 빚의 굴레를 씌워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참에 금융위에 몇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먼저 기존 채무자 통계를 보강해야 한다. 금융위는 애초 장기 연체자 지원 사업으로 신용이 회복될 수 있는 사람을 약 159만 명으로 추산했다가 최근 들어서야 통계 수정 작업에 착수했다. 159만 명은 각 금융회사 등이 보유한 개별 대출 채권 건수를 단순 더한 것으로, 여러 금융기관에 빚을 진 다중 채무자를 고려하면 실제 지원 대상은 159만 명보다 훨씬 적다는 이유에서다.

이날도 금융위는 장기 소액 연체자 지원 사업 신청자가 현재 5만3000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중복으로 집계한 사람을 뺀 실제 신청자 수는 4만 명가량이었다. ‘사람’이 아닌 ‘채권’ 건수를 기준으로 삼다 보니 정책 수립과 집행의 가장 기본인 통계 집계조차 허점을 보인 것이다. 이제라도 채무자를 중심에 놓고 단순 금융 통계를 넘어 일자리, 소득, 자산 정보 등을 연계한 종합적인 통계를 구축해야 향후 실효성 있는 채무자 구제 정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채무 연체자의 실질적인 재기를 위한 사회 안전망도 필요하다. 빚 탕감만으로 저소득 채무자의 삶을 바꿀 순 없다는 얘기다.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살피는 후속 조치가 중요하다. 재무 상담과 신용 관리, 취업 교육 등을 넘어 복지 제도를 탄탄하게 구축해야 과다 채무자가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쓴소리를 가벼이 들어선 안 된다. 물론 이런 정책은 금융위의 업무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러니 기획재정부 등 다른 부처와도 정책 협업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2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장기 소액 연체자 지원 현황 점검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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