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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을 기업 조건? 마우스+시멘트!

오현주 기자I 2017.12.20 00:12:00

알리바바 마윈이 본 '미래 선점 전략'
온·오프에 모바일·AI 얹은 '신유통' 등
'5新 전략'으로 플랫폼혁명 주도해야
"IT 시대 종말…이제 DT 시대로 승부"
…………
마윈, 내가 본 미래
마윈|384쪽|김영사

지난 9월 알리바바 창립 18주년 기념행사에서 임직원 4만명 앞에 선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 1999년 알리바바를 세운 마윈이 18년 기업경영을 통해 터득한 미래전략을 제시했다. IT시대가 저문 자리에 찾아든 DT시대에선 신유통·신제조·신금융·신기술·신에너지 등 ‘5신 전략’만이 기업을 살아남게 할 절대조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사진=신화/뉴시스).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976년 중국 항저우호텔 앞에서 외국인을 찾아 헤매던 열두 살 소년이 있었다. 무료로 관광안내를 해준다고 했지만 속셈은 ‘영어’였던 듯했다. 띄엄띄엄 한마디씩 배운 영어는 10여년쯤 지나니 자산이 됐다. 대학에서 영문학까지 전공하고 졸업한 1988년, 중국 항저우 시후에 번역회사를 차렸다. 여기서 끝나버렸다면? 못내 섭섭했을 거다. 7년 뒤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 접속한 인터넷이 진짜 무기가 됐으니까. 중국 최초의 인터넷 기업을 세운 계기가 됐으니까.

그해 바로 차린 항저우 하이보컴퓨터서비스는 워밍업이었다. 4년이 지난 1999년, 세상은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독특한 이름을 접한다. ‘알리바바’. 훗날 매일 1억명이 물건을 구매한다는, 점유율 80%에 달하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회사의 시작이었다. 다시 4년 뒤 이번엔 탄알을 장착했다. ‘타오바오’다. 알리바바의 거래사이트인 이 오픈마켓은 3년 만에 정상에 오르며 일찌감치 인터넷 기업의 전설이 됐다.

그리고 바로 지난달 11일. 중국 광군제인 이날 24시간 동안 알리바바는 사상 최고의 온라인 매출액을 끌어냈다. 무려 1682억위안(약 28조 3000억원). 1초당 25만건의 주문결제를 소화하며 지난해 대비 매출 40%를 상승시킨 기염을 토한 거다. 참가한 브랜드도 놀랍다. 14만개, 이 중 6만개는 해외서 왔다. 나이키·유니클로·샤오미 등 82개 브랜드는 이날 매출액 1억위안(약 168억 2000만원)을 넘겼다. 2009년 연인 없이 심심한 싱글들에게 쇼핑이나 해보라고 권유한 이벤트가 해마다 미친 기록을 쓰는 중이다. 아이디어는 그때 그 소년에게서 나왔다. 40여년 전 항저우호텔을 기웃거리던.

더 나가면 군더더기가 될 터. 이쯤에서 일단락하자. 이 전말은 오로지 한 사람에게서 비롯됐다. 마윈(53)이란 이름의 작고 왜소해 보이는 남자. 그는 알라바바그룹의 창업자이자 회장이다. “10년 후 필요한 것이라면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는 지론은 막강한 실체를 가진 현실이 됐다. 책은 마윈이 직접 저자로 나서 내다본 ‘미래상’이다. 시대 정의부터 바로잡고 시작한다. IT 시대는 이미 종 쳤다고, 벌써 DT 시대에 들어섰다고. DT는 데이터 테크놀로지를 뜻한다.

△인터넷 기업, 3년 유지가 어려운 이유

단도직입적으로 꺼내보자. 지난 20여년 인터넷 기반으로 세상을 뒤집어온 마윈이 생각하는 ‘기업이 살아남을 조건’이란 게 뭔가. “나는 매우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가 힌트이자 반전이다. 인터넷 회사 중 안정적으로 3년 이상 유지한 기업이 드물다는 게 그 ‘이상한 현상’이다. 구글도, 페이스북도, 아마존·이베이, 하물며 알리바바까지 “매일 걱정하고 노심초사하고 있더라”는 거다.

이유는 단순하다. 30년은커녕 3년 후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이란다. 거대한 변화가 있을 거라는 건 안다. 그런데 그게 도대체 뭔지, 최첨단이라고 쓰는 데이터가 어떤 상태로 변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까닭에서다.

그러면 끝까지 걱정만 하고 있어야 하나. 아니, 방법이 있다. 마윈이 제시한 해결책은 바로 마우스와 시멘트를 결합하는 거다. 인터넷 경제와 실물 경제를 합체하는 방식. 그것만이 유일한 열쇠란다. 비로소 디지털 경제가 데이터 경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매출의 신이 말하는 ‘5신’이란 건?

알리바바 앞에 자연스럽게 붙는 ‘전자상거래’란 말도 데이터 경제에서는 걸리적거린다. 내년부터 알리바바는 이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왜? 전자상거래는 더 이상 비즈니스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니까. 대신 등장시킬 게 있다. ‘신유통’이다. 되레 고리타분해 보이는 이 단어에 마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바일과 인공지능, 물류까지 깡그리 쓸어담았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건 누구나 믿고 있듯 세상이 온라인으로만 향하는 일방통행이 아니란 거다. “오프라인기업은 반드시 온라인에 가야 하고 온라인기업은 반드시 오프라인으로 가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신유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가. 아니다. 마윈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5신(新) 전략’에 들어 있다. 미래경영전략의 핵심이 될 ‘다섯 가지 새로운 전략’ 말이다. 온·오프라인과 모바일, 인공지능을 결합한 새로운 유통플랫폼인 ‘신유통’에 더해, 개성과 맞춤형을 강조하는 ‘신제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신용체계인 ‘신금융’, 인터넷과 빅데이터를 융합한 ‘신기술’, 데이터 주도형 혁명을 이끌어갈 ‘신에너지’ 등.

엄청난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수도 있다. 사실 다 나온 내용 아닌가. 하지만 맥락을 이해한다면 단순치가 않다. 중국이 어떤 나라인가. 저렴하고 조잡한 상품을 대량으로 밀어내던 데가 아닌가. 그런데 중국 최고기업이 이런 걸 하지 말자고 나선 거다. 저렴한 가격이 아니라 새로운 제품과 혁신으로 승부를 내보자고 책까지 쓴 거다.

△“10년 후 하루 3억개 택배를 어찌 배송할 건가”

마윈이 꿈꾸는 세상은 한 줄로 연결된다. 개발도상국·중소기업·청년이 혜택을 누리는 세계화다. 과거의 세계화가 경제대국이나 대기업에만 혜택을 줬던 모양새에 선을 긋는 것이다. 구체적인 제안도 했다. ‘세계전자무역플랫폼’(eWTP). 무역장벽을 쌓고만 있는 현재의 세계무역기구(WTO)를 재편하자는 말이다.

다 좋다. 하지만 최고경영자의 고민은 결국 기업을 제대로 살리는 일이 아니겠나. 마윈은 회사를 세운 뒤 지금껏 두려웠던 한 가지를 고백했다. “알리바바가 산산조각이 날까봐.” 2009년 이미 ‘세계에 일자리 1억개를 만들고, 1000만개 기업에 플랫폼을 제공하고, 10억명 소비자에게 장을 열어줄 것’을 선언한 이후에도 말이다.

성공스토리는 늘 화려하다. 그런데 정말 화려하기만 했겠나. 이 장면 한 토막으로 마윈의 고충을 엿보자. 2015년 APEC 지도자 비공식회의가 열렸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과 마윈이 만나 토론을 벌였다. 오바마가 물었다. “정부가 당신 같은 젊은 창업자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윈의 대답은 이랬다. “정부가 할 일은 간단합니다. 세금을 감면해주면 됩니다. 젊은 창업가에게 세금을 거둬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지나치게 알리바바 위주로 돌린 책의 한계는 인정하자. 어찌 보면 그 틀을 부수라고 요구할 순 없는 노릇이다. 마윈의 말 안에 이미 중국의 변화, 시대의 변화가 들어있으니. 매일 3000만개의 택배를 운송한다면서도 10년 후 하루 3억개의 택배를 어찌 배송할 건가를 고민하고 있다는 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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