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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색다른 공연장이 새로 문을 열었다. 구세군회관 건물에 들어선 ‘모두예술극장’이다. 2020년 제정된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이 함께 마련한 ‘장애예술 표준공연장’이다.
◇모두예술극장, 장애예술인의 오랜 숙원 결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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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향유할 수 있고 ‘모든 형태의 예술’이 ‘모이는’ 공간을 지향한다. CI도 이런 의미를 담았다. ‘모두’의 모음에서 딴 CI(ㅁㄷ)는 사각의 장벽(‘ㅁ’)에서 문을 열고(‘ㄷ’) 함께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장문원은 모두예술극장을 장애예술인들이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교류와 협력의 장으로 만들고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 문화예술의 다양성과 포용성 증진에 이바지하겠다는 목표다.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인 점이 특징이다. 특히 핸드레일을 공연장 내 전 공간에 설치한 것이 눈에 띈다. 공연장과 부대시설에 설치된 핸드레일 길이를 합치면 무려 300m에 달한다. 바닥의 높낮이 차도 없앴다. 평면으로 공간을 조성해 이동 약자의 활동이 자유롭게 만들었다. 어둡고 갇힌 공간을 불편해하는 발달장애인을 위해 라운지 등 휴식 공간도 채광이 잘 되는 구조로 마련했다.
공연장은 객석과 무대의 위치를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는 ‘블랙박스’ 형태다. 250석 규모의 공연장은 필요한 휠체어 좌석 수에 따라 자유롭게 객석을 운영할 수 있다. 기존 공연장은 휠체어석을 객석 뒤편에 주로 마련한다. 반면 모두예술극장은 객석 맨 앞을 휠체어석으로 배치했다. 공연장 2층은 계단 없이 모두 평면으로 구성했다. 객석 아래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기도 적혀 있다. 오세형 장문원 공연장추진단장은 “앞으로도 장애인의 의견을 반영해 극장 운영의 장애인 편의성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공연 프로그램 또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들로 꾸린다. 최근엔 호주 백투백시어터의 ‘사냥꾼의 먹이가 된 그림자’가 관객을 만났다. 백투백시어터는 지적 장애 배우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세계 연극계 최고 권위의 ‘국제 입센상’을 수상한 극단이다. 연출가 배요섭이 시각장애인 6명과 함께 진행하는 워크숍과 쇼케이스, 장애인 극단 다빈나오의 김지원 상임연출가가 참여하는 뮤지컬 ‘푸른 나비의 숲’ 등도 추후 선보일 예정이다. 모든 공연은 무료로 진행한다.
◇공간 부족으로 인한 창작 어려움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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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예술극장이 문을 열면서 장애예술인의 고충도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김형희 장문원 이사장은 “‘모두예술극장’은 장애예술인의 꿈과 염원이 담긴 공간”이라며 “장애예술인의 활동은 비장애인과 함께 작업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모두예술극장은 통합의 의미를 함께 담아가는 곳이다”라고 밝혔다. 오 단장은 “소외된 장애인을 조명하는 문화 콘텐츠는 우리의 삶을 성숙하게 만든다”며 “감성의 확장, 그리고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장애예술은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기존 공연장도 장애인 관객을 위해 시설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은 무장애 관람 환경 조성을 위해 공연 시작 적 비상 대피 안내를 수어 통역과 자막이 있는 영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중 기존 객석 29석을 철거하고 휠체어석 5석을 추가로 마련할 계획이다. 국립극장은 지난해 대극장인 해오름극장 지하 분장실에 장애인용 화장실을 새로 설치했고, 연습실 입구 또한 장애인 출입이 쉽도록 자동문으로 교체했다. 장애인 관객의 예매를 돕기 위한 ‘장애인 우선 좌석 제도’(자막과 배우를 편하게 볼 수 있는 좌석을 우선 예매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그러나 뮤지컬 전용 극장 등 민간 공연장은 아직 장애인을 위한 시설 마련이 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예술극장이 공연장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김 이사장은 “장문원은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도 장애예술인의 활발한 창작 활동을 위해 배리어프리 매뉴얼을 개발하고 보급하고 있다”며 “장애와 비장애 구분 없이 공연을 함께 관람할 수 있는 시설을 꾸준히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