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원재연 기자]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실제 사용 환경에서 검증되지 않으면 방산 조달 시장의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합니다. 기술력 하나만으로는 투자 결정을 내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
박제우 이앤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방산 스타트업 투자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군 실증 경험'을 꼽았다. 기업이 보유한 기술의 수준뿐 아니라 실제 최종 사용자인 군이 전장과 현장 환경에서 해당 기술의 작동 여부를 검증했는지를 확인해야 실제 조달과 양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앤인베스트먼트는 올해 한국성장금융과 한국산업은행의 출자사업에 잇달아 선정돼 '이앤K-방산기술혁신펀드'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400억원을 웃도는 규모로 펀드를 확대하기 위해 추가 출자자를 모집하고 있으며, 결성 기한 안에 자금 모집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대표 펀드매니저를 맡은 박 대표는 방위산업과 민간시장에서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듀얼유즈' 기업을 집중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다. 하나의 핵심 기술이 민수와 군수 분야에 함께 적용되고, 군수 매출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민수 매출로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기업이 주요 투자 대상이다.
운용 전략을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미국의 인큐텔(In-Q-Tel)을 참고했다. 인큐텔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1999년 설립한 비영리 벤처투자기관으로, 국가안보에 활용할 수 있는 민간 기술을 발굴해 정부기관의 실제 수요와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정부가 인공지능(AI)과 드론, 사이버 안보, 우주항공 등 신안보 분야의 혁신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한국형 인큐텔' 설립을 추진하는 가운데, 민간 벤처캐피털(VC)의 심사와 육성 역량을 접목해 국내 방산 스타트업의 사업화를 돕겠다는 구상이다.
박 대표는 "단순히 방산과 관련된 기술을 보유했다는 이유만으로 투자하지 않고, 실제 수요와 조달 가능성까지 검증할 수 있는 자체 심사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산 기술, 군이 현장에서 직접 검증해야"
방산 스타트업은 일반 기술기업과 달리 기술 개발만으로 사업화가 완성되지 않는다. 군의 요구 성능을 충족해야 할 뿐 아니라 실제 운용 환경에서의 검증과 조달 절차, 양산 능력까지 갖춰야 매출로 이어질 수 있다. 기술의 우수성만으로는 사업화 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에 이앤인베스트먼트는 기업의 기술 수준과 실제 국방시장 진입 가능성을 단계적으로 확인하는 2단계 스크리닝 체계를 마련했다. 1차 단계에서는 방위산업과의 관련성, 기술신용평가(TCB) 등급 등 정량적 필수요건을 점검한다. 이후 2차 단계에서는 군 실증과 납품 이력, 양산 가능성 등을 토대로 기업의 성장 잠재력과 투자 이후의 육성·회수 가능성을 심층적으로 살핀다.
세부 평가 항목은 기술성숙도와 제조성숙도, 군 실증 경험, 납품 실적, 양산 역량이다. 이 가운데 가장 비중 있게 보는 항목은 군 실증 경험이다. 기술력과 양산 역량은 기업 내부 역량인 반면, 군 실증은 실제 최종 사용자인 군이 현장에서 기술의 작동 여부를 확인한 외부 검증이라는 판단에서다.
박 대표는 "기술력과 양산 역량은 실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군 실증은 우리 기술이 실제 전장과 현장 환경에서 작동하는지를 제3자인 군이 검증한 사실상 유일한 외부 증거"라며 "국방과학연구소(ADD)나 방위사업청의 전투실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실제 조달로 이어질 가능성도 낮다"고 말했다.
이어 "전투실험 인증을 획득하고 LIG넥스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현대로템 등 체계종합업체와 협력관계를 구축한 기업이 아직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는 기업보다 높은 투자 우선순위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군 실증을 마쳤다고 곧바로 대규모 계약이 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앤인베스트먼트는 기술 검증 이후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기까지의 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하고, 기업이 각 단계에서 필요한 자금과 네트워크를 지원할 계획이다.
첫 단계는 방위사업청의 신속연구개발사업이나 국방기술진흥연구소 연구개발(R&D) 과제 등 소규모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계약 금액은 크지 않지만 군이 해당 기술을 공식적으로 검토했다는 이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후 신속시범획득사업이나 조달청 혁신제품 지정 등을 통해 정식 납품 실적을 쌓아야 한다. 소규모 물량이라도 국방 조달 절차를 실제로 통과한 경험이 있어야 체계종합업체의 협력사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지막 단계는 양산 프로젝트를 보유한 체계종합업체의 공급망에 진입하는 것이다. 부품이나 서브시스템 공급사로 자리 잡으면 일회성 사업 중심의 매출을 양산 물량에 기반한 반복 매출로 전환할 수 있다.
박 대표는 "투자 시점에 해당 기업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추가 R&D 자금인지, 체계기업과의 연결인지, 양산설비 투자인지를 구분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투자금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직접 다리를 놓는 투자자가 되려 한다"고 덧붙였다.
"과열된 기업가치 좇지 않을 것"
이앤인베스트먼트가 듀얼유즈 기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방산 특유의 긴 사업화 기간을 견딜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군수사업은 기술 개발 이후에도 실증과 조달, 양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기간 민수 매출을 확보한 기업은 연구개발과 조직 운영을 이어가며 군수 본계약까지 버틸 수 있다.
이앤인베스트먼트는 펀드 결성 전부터 방산·듀얼유즈 기업 10곳 안팎과 미팅을 진행하며 투자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구체적인 기업명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군 실증을 마치고 체계종합업체와 협력관계를 구축한 기업, 소규모라도 정식 계약 형태의 납품 실적을 확보한 기업 등이 검토 대상에 포함됐다.
박 대표는 "펀드가 결성되는 즉시 투자 논의를 구체화할 수 있는 기업들을 살펴보고 있다"며 "기술력뿐 아니라 현재 군 실증과 조달 과정의 어느 단계에 있는지, 투자 이후 어떤 지원을 해야 양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함께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방산과 AI, 로봇, 드론, 우주 등 국방 첨단기술 분야로 투자금이 몰리면서 일부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실제 사업 성과보다 빠르게 높아진 점은 경계 요인으로 꼽았다. 아직 군 실증이나 납품 실적이 충분하지 않은 기업까지 기대감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판단이다.
박 대표는 "주목받는 상당수 기업의 기업가치가 투자금 쏠림 속에서 실제 가치보다 오버슈팅된 측면이 있다"며 "투자의 성공은 좋은 기업을 선별하는 것뿐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적정한 가격으로 투자하는 데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 분위기에 휩쓸려 투자를 서두르기보다 군 실증과 납품 실적, 양산 가능성을 바탕으로 기업의 적정 가치를 판단할 것"이라며 "철저한 심사와 단계별 육성을 통해 수익성과 안정성을 함께 확보하는 펀드로 운용하겠다"고 강조했다.




![[그해오늘] 160cm 마른 여성, 여대생 살인 현상수배…가짜였다?](https://image.edaily.co.kr/images/vision/files/NP/S/2026/08/PS26081900001t.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