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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입법'에 택시업 벼랑끝…월급제 급제동

한광범 기자I 2024.08.16 04:59:00

[택시월급제의 역설]
20일 택시월급제 전국 시행 앞두고 법개정 속도
서울 외 지역, 기사 최저임금 맞추기도 불가능
2019년 택시법 개정 후 법인택시 경쟁력 ''뚝뚝''

서울 한 택시업체 차고지에서 기사를 구하지 못해 운행하지 못하는 택시들이 주차되어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이데일리 한광범 이유림 박경훈 기자] “기자 양반, 간단히 생각해 봐요. 열심히 일하나 대충 일하나 똑같은 월급을 받으면, 누가 죽기 살기로 일하겠어요?”

법인택시 기사인 50대 최모씨는 14일 ‘택시완전월급제(월급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택시월급제는 법인택시기사가 주 40시간 이상 일하고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받는 제도다. 2019년 관련 법(택시발전법)이 개정됐고 2021년부터 서울에서 우선 시행됐다. 오는 20일부터는 전국으로 확대 시행되는데 택시회사와 택시기사 모두 이를 반대하고 있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택시발전법 개정에 나선다. 오는 19일 국토교통위원회 교통소위에서 이해 관계자들을 불러 의견을 청취한다. 여야 모두 대체적으로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만큼 월급제 폐지 또는 시행 유예 등을 담은 법 개정은 조속한 시일 내에 이뤄질 것이 유력하다.

택시월급제의 문제는 법인택시의 매출이 월급제를 시행할 만큼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와 택시업계에선 택시회사가 기사에게 최저시급 기준 월급(206만원)을 주기 위해선, 택시 1대당 월 매출이 500만원을 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하지만 국토부의 2023년 시·도별 법인택시 월평균 매출액 통계를 보면, 서울만 509만원으로 이 기준을 간신히 넘어섰다. 충남(301만원)·경남(302만원)·대구(306만원) 등 대부분 지역은 기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개인택시 3부제(이틀 근무하고 하루 쉬는 것)가 풀리면서 법인택시의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월급제를 도입하면 버틸 택시업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월급제가 우선적으로 도입된 서울에서는 법인택시 시장이 크게 위축됐다. 택시단체들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서울의 등록 법인택시 수는 1만 5031대, 법인택시 기사수는 2만 52명으로 택시법 개정안 시행 이전인 2019년 12월 보다 등록 택시수는 22%, 기사수는 34%가 급감했다.

기사들 역시 불만이다. 일한 만큼 수익을 얻을 수 없다는 점과 함께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사라져서다. 수십년 간 월급제 도입을 외쳐온 택시노조조차 ‘월급제로 노사 모두 공멸할 수 있다’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장호 한국교통대 교수는 “월급제 도입 당시엔 버스 준공영제처럼 서비스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좋은 취지와 달리 실제 운용 측면에서 노사 모두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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