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3주째다. 안타깝게도 양측간 화해 분위기는 전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의료계 전면 파업에 따른 의료공백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현재 병원으로 돌아온 전공의는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 1만2907명 중 922명(7.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개원의가 아닌 전공의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들은 현재 의사를 연간 3000명씩 배출하고 있는데 5000명으로 늘 경우 의료교육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려 교육의 질도, 의료의 질도 저하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미래 개원가가 포화상태가 될 것을 우려해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과다 배출된 의사들이 개원가로 쏟아질 경우 경쟁이 심화하고 이는 고스란히 수익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문제는 의-정 갈등 상황을 중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의협은 오히려 판을 키우려는 듯 개원의, 교수들의 파업 동참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한 개원의는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는데다 좋지 않은 여론에 동네에서 파업 병원이라고 낙인 찍힐까봐 그 누구도 나서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전공의 비중이 컸던 대형병원은 매출액이 하루 2억~10억원씩 줄어 직원들의 월급을 걱정하고 있다. 반면 전공의가 거의 없던 1~2차 병원에서는 몰려오는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정부는 이참에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새판을 짜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PA간호사가 전공의 업무 일부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대폭 완화했다. 비대면진료도 전면 허용했다. 국민도 이럴 때 아프면 안 된다며 병원을 덜 찾고 있다. 반복되는 의정갈등 상황 속 정부와 국민의 대처가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전공의 사이에선 조금씩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평소 돌보던 환자가 위중해져 다시 병원에 돌아가고 싶어하는 전공의가 있는가 하면 어려운 집안 형편에 얼마 안 되는 전공의 월급마저 끊겨 생활고에 시달리는 전공의도 있다고 한다. 복귀해서 정부에 요구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더니 이젠 선후배, 동기들의 눈치에 단독 행동이 어렵다고 한다. 학교 선배가 직장 선배로 이어지는 특성 때문에 단독 복귀할 경우 앞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불이익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현장에서 만난 한 전공의는 퇴로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했다. 정부가 전공의들을 위해 한발만 물러서 준다면 전공의들도 다시 현장에 복귀할 수 있게 되지 않느냐는 얘기다. 그러면서 의료분쟁에 대한 부담 완화를 요구했다. 정부도 이를 위해 의료사고 특례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하지만 번갯불에 콩 구워먹을 수 없는 노릇이다. 입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복귀가 먼저라고 입을 모은다. 강대강 대치 속에서 상처받는 건 국민과 전공의가 되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모범생으로 손꼽히며 엘리트 과정을 거쳐온 전공의들이다. 이번에도 엘리트 다운 투쟁의 모범을 보이기를 바란다. 장외가 아닌 장내에서 자신들의 소임을 다하며 요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