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시아의 흑해 곡물협정 파기로 세계 식량 수급에 또 한번 비상이 걸렸다. 흑해를 통해 전 세계로 식량, 곡물, 비료 등이 수출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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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식량자급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으로 특히 세계식량가격 변동성에 취약한 상황이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44.4%, 곡물 자급률은 20.2%에 불과하다. 주요 곡물 중에서 쌀을 제외하면 콩 자급률은 6%, 밀과 옥수수 자급률은 1% 이하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경연에 따르면 전체 곡물 수입단가가 10% 상승할 경우 국내 소비자물자지수(CPI)는 0.39% 상승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내 생산 증가를 통한 자급률 상승에는 한계가 있다. 한 원장은 곡물·용도별 특성에 맞춘 안정적 곡물 수입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출제한 조치에 대비해 수입선 다변화를 위한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해외 곡물 유통시설 추가 확보를 위한 융자 지원, 선물시장을 이용한 가격 변동성 위험 회피, 장기 공급계약 등의 방식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가 쌀 위주로 비축을 하고 있으나 소비가 많은 밀 비축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한두봉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최근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을 탈퇴하면서 세계 식량가격이 다시 오르고 있다. 식량값이 2배 이상 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우크라이나 전쟁과 달리 흑해 협정 결렬 우려와 최근 주요곡물의 수급여건 전망은 이미 시장에 반영돼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작년과 같은 가격 폭등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곡물수출기반 핵심 시설 공격으로 주요 곡물 가격이 평년보다 10~20% 높은 상황이다. 여기에 이상기후 등의 영향으로 올해 국제 곡물 가격은 가격 안정기였던 2000~2005년과 비교해 50~60% 상승할 전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후변화 외에도 식량안보에 위협이 되는 요인으로는 또 어떤 것이 있나.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기류 등 국가 간 분쟁으로 글로벌 무역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먹거리의 34%를 미국과 중국에 의존한다. 작년 농축산물 수입액 가운데 미국이 22%, 중국이 12%를 차지했다. 양국의 정치·경제적 갈등 속에서 어느 한 국가를 지지할 경우 다른 한 나라와의 관계가 악화하면 농산물 무역 보복에 의한 식량 수입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 2008년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업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 당시 국내 소비자 물가는 7.3% 상승했는데, 이 중 4.6%포인트가 수입곡물 가격 상승으로 인한 것이었다.
-국내 식량자급률은 꾸준히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응 노력이 지지부진 했던 것 같다.
△식량안보 확보를 위해 필요한 국내 비축물량 확대, 해외 엘리베이터 확보 등은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국민적 합의와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08년 애그플레이션과 러-우크라이나 전쟁 등 공급 차질 우려 상황에서 가격 상승으로 물가가 오른 적은 있어도 실질적으로 곡물 확보 등에 차질이 발생한 적은 없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구입 비용이 높은 장기계약이 일반화되지 않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서 애그플레이션 이후 해외 유통망 확보를 위한 사업을 진행했으나 이 역시 비용 등의 문제로 실패한 바 있다.
-안정적인 곡물 수입 체제 구축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민간기업의 해외 곡물 공급망 확보가 중요하다. 곡물 엘리베이터와 같은 해외 곡물 유통시설 추가 확보를 위한 융자 지원으로 해외 곡물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 또 주요 수출국과의 국제 협력관계 구축 또한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효과적인 방법이다. 인도태평양프레임워크(IPEF)와 같은 경제공동체를 통해 회원국들이 식량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 주요 수출국과 경제협력 체계를 원만하게 구축해 국내로 수입되는 물량에 대한 수출제한 예외 조치가 가능한 협정을 맺는 등 제도적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선물시장을 이용한 가격 변동성 위험 회피, 장기공급계약 등의 방식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국내 비축을 위한 항만이나 물류 등 시스템이 미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 비축은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국민 생활과 경제활동에 꼭 필요한 물자를 저장하고 위기 시 이를 방출하는 제도다. 통상적으로 소비량의 2개월 치는 비축해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서 식품회사는 일반적으로 1개월 치 이상을 안 한다. 정부는 쌀 위주로 비축을 하고 있다.
현재 고려해 볼 사항은 국민 소비가 많은 식용 밀을 식량안보용으로 비축하는 것이다. 밀 소량의 2개월 분량인 40만t(톤)을 비축한다고 가정했을 때 현재의 항만 시설을 이용한 보관 여력은 크지 않아 새로운 시설을 지어야 한다. 이때 저장시설 건설 비용은 약 1700억원이 소요된다. 여기에 비축 비용도 연간 300~400억원이 소요된다.
-해외에서는 식량안보에 대비해 어떻게 대처를 하고 있나.
우리보다 인구가 2.3배 많은 일본의 경우 곡물 수입량도 더 많다. 일본은 1972년 가뭄으로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미국의 콩 수출금지로 곡물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상사들을 중심으로 국제 곡물유통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2014년 호주와 경제 파트너십 협약을 체결해 일본에 대한 수출금지나 제한을 취하지 않도록 합의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농업 관련 기업과는 대규모 금융지원을 통해 일정 곡물을 일본에 수출하도록 하고 있다.
170개 이상의 국가에서 먹거리의 90% 이상을 수입하는 싱가포르는 세계식량안보지수 1위 국가다. 소득수준이 높은 이유도 있지만, 자국 기업의 해외진출을 장려해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동시에 자국 식량 생산량을 늘이기 위해 농업허브 구축, 농가 지원을 위한 기금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한 원장은…
△1958년 경기도 수원 출생 △고려대 농업경제학 졸업 △텍사스 A&M 대학교 농업경제학 박사 △농촌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고려대 교수학습개발원장 △한국농업정책학회 회장 △한국농업경제학회 회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위원회 자문위원 △농림축산식품부 농축산물무역정책심의회 위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