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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의도 못한 재정준칙 법제화…예타 상향은 ‘일사천리’
12일 국회 기재위 경제재정소위는 사회기반시설(SOC) 및 국가연구개발사업(R&D)의 예타 대상 기준을 500억원(총사업비)에서 1000억원을 2배 상향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예타 면제 기준이 상향되는 것은 1999년 예타 제도가 도입된 이후 24년 만이다. 해당 개정안은 이르면 17일 기재위 전체회의를 거쳐 4월 임시국회 내 본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지난해 12월 이미 잠정의결했던 내용이기에 본회의 통과도 신속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반면 예타 기준금액 확대의 ‘안전장치’ 역할을 할 재정준칙 법제화는 4월 임시국회에서 전혀 논의되지 못했다. 국회 관계자는 “4월은 소위에서 논의할 시간이 많지 않기에 재정준칙 법제화와 같은 쟁점 법안은 여야 모두 올리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재정준칙 법제화란 국가 부채와 재정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정 비율 이하로 유지하는 내용을 입법화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비상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하면서 ‘재정준칙 법제화’와 ‘예타 면제 기준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확대된 경제 규모를 감안해 예타 기준 금액을 상향하지만, 방만 예산으로 흐를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하도록 재정준칙을 함께 가동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국회는 예타 면제 기준만 확대, 사실상 안전장치가 없는 예산 폭탄을 만들어낸 셈이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재정학회장)은 “재정준칙이 있을 때 예타를 완화하는 것은 큰 범위 내에서 제약을 걸었으니 나머지 세부분야는 약간의 자율성을 준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둘을 같이 추진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재정운용을 엄격하게 하는 부분은 제외하고, 세부분야도 대충하겠다는 것은 앞으로 (재정상황이)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예타 기준 완화를 무조건 욕할 것은 아니다. 예타를 하면 시간이 필요하고 그런 면에서 경제성이 떨어지게 되는 면도 분명히 있다”면서도 “다만 재정을 잘 쓰고 있었을 때는 예타 기준을 완화해도 괜찮지만, 지금처럼 낭비적으로 쓰는 것이 고착화 됐을 때는 유연성보다 제약을 가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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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심성 지역 예산 불보듯…“SOC 유지비용도 우려”
전문가들이 재정준칙 없는 예타 기준 상향을 더욱 우려하는 것은 내년 4월 총선을 1년도 남겨두지 않고 있어, ‘선심성 예산’ 우려가 커지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는 예타에서 퇴짜를 맞았던 사업도, 예타가 면제돼 집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기준금액 상향은 더욱 악용될 여지가 많다는 우려다.
실제 예타 단계에서 떨어졌던 김천~거제 172㎞ 구간 남부내륙 고속철도(KTX) 사업 역시 21대 총선을 1년 앞둔 2019년 1월 예타가 면제됐다. 또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대해 예타 면제 조항을 담은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바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예타 면제는 보통 선거 직전에 많이 하는데, 지금부터 내년 4월 선거를 앞두고 상당수 예타면제가 하반기에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여야가 합심해서 (예타 기준 상향 법안을)통과시켰다는 것은 선거에 활용할 여지가 크고,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또 “예타 기준금액이 상향됐으니 정치 공약을 이행하기 더 용이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예타 기준 상향 대상이 도로, 철도, 항만 등 SOC 사업이라는 점도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필요없는 SOC 사업은 당장의 재정도 문제가 되지만 유지보수 비용이 발생할 수 있기에 장기적으로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재정준칙을 보류하고 예타기준을 완화했다는 것은 지역의 민원을 많이 봐주겠다는 오해를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총선을 앞두고 있다보니 재정준칙 없는 예타 기준 상향은 당연히 선심성 지출을 확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잘못된 SOC 사업은) 유지관리 비용까지 필요하기에 계속 돈이 들어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