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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국내 양대 미술품 경매사가 동시에 나서 올해 미술시장에 먼저 불을 붙인 ‘2월 메이저 경매’가 마무리됐다. 지난 22일과 23일 하루 사이로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제165회 미술품 경매’와 ‘2월 경매’를 차례로 열었다. 추정가로 예상했던 규모는 275억원대(서울옥션 188억원, 케이옥션 87억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작부터 ‘뭉칫돈’을 끌어들일 블루칩 작가군으로 이우환(86)과 쿠사마 야요이(93), 김환기(1913∼1974) 등이 꼽히면서 관심은 그간 상승세를 계속 이어갈 건가에 모였다. 여기에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두 경매사가 집중공략한 아이템이 겹치면서 묘한 경쟁구도를 보이기도 했다. 바로 ‘이우환 대 이우환’과 ‘김환기 대 김환기’였다.
하지만 이들에 앞서 단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 한 점 있었으니 서울옥션에서 출품한 쿠사마의 ‘무한그물에 의해 지워진 비너스상’(Statue of Venus Obliterated by Infinity Nets·1998)이다. 40억원의 추정가를 달고 나온 이 작품이 과연 팔려나가겠는가에 관심이 집중됐다.
◇서울옥션·케이옥션 ‘2월 메이저 경매’로 다시 ‘불’
일본 현대미술작가로, 국내서 팬덤을 몰고 다니는 외국작가 중 가장 인기가 높은 작가인 쿠사마의 이른바 ‘땡땡이 비너스상’은 44억원에 낙찰됐다. 22일 서울옥션 ‘제165회 미술품 경매’에 나선 이 ‘무한그물에 의해 지워진 비너스상’은 시작가 36억원에 출발, 2억원씩 호가를 높여나갔고 최종적으로 44억원을 부른 응찰자의 품에 안겼다.
작품은 1998년 미국 뉴욕 로버트 밀러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에 선뵀더랬다. 회화와 조각을 결합한 독창적인 형태로 단숨에 주목받았는데. 이른바 ‘그물 시리즈’로 불리는 쿠사마의 대표작 ‘인피니티 넷츠’를 배경으로 동일한 패턴의 비너스 조각을 세웠던 거다. 당시 쿠사마는 각기 다른 색상으로 동명의 연작 10점을 선뵀는데, 이번 출품작은 그중 네 번째인 붉은색 버전이다.
전체적으로 붉게 보이긴 하지만 네트를 만든 점은 검은색이다. 마치 입체조각이 평면캔버스에 빨려들어가는 착시효과를 일으키는데,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는 비너스상은 그물망 이미지에 덮여버린 탓에 ‘소멸되고 지워지고’마는 거다. 강박증으로 인한 환각과 착시를 예술로 승화시켜온 쿠사마가 세기의 조각품인 비너스상까지 동원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정점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조각의 크기는 67×76×214.5㎝, 그 조각의 배경이 되는 캔버스의 크기는 227.3×145.5㎝에 달한다.
그런데 단순히 ‘팔렸다’를 넘어선 ‘판매이력’이 눈길을 끄는 거다. 11년 전인 2011년 6월에도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쿠사마의 ‘땡땡이 비너스상’이 팔려나간 적이 있다. 10점 중 분홍색 버전인 ‘무한그물에 의해 지워진 비너스상’(1998)이다. 당시 가격은 430만홍콩달러(약 5억 9800만원). 11년 사이에 쿠사마의 ‘땡땡이 비너스상’은 국내 경매사가 주도한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7배 이상 가격이 뛴 셈이다. 물론 동일한 작품은 아니더라도 같은 시기에 제작해 같은 날 발표한, 색만 다른 동명 연작이란 점을 감안할 때 미술시장에서 뻗쳐오르는 쿠사마의 상승세는 충분히 가늠해볼 만하다.
이번 44억원에 팔린 작품과 동일한 작품인 ‘붉은색 버전의 땡땡이 비너스상’도 3년여 전 국내 경매시장에 나왔던 적이 있다. 2018년 11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 시작가 30억원을 달고 출품했으나 새 주인을 찾지는 못했다.
◇MZ세대 겨냥한 ‘젊은’ 작품들…내놓는 족족 팔려
또 다른 기대를 모았던 ‘이우환 대 이우환’ ‘김환기 대 김환기’의 대결구도는 제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서울옥션에서 밀었던 이우환의 150호(227×182㎝) ‘선으로부터’(1982·추정가 15억원)가 유찰되고, 케이옥션이 내놓은 ‘항아리’(1958·추정가 12억∼20억원)가 경매 전 출품이 취소되면서다.
거래가 성사되지 못한, 매치를 형성했던 작품들을 제외하면, 케이옥션에 나선 이우환의 40호(80.3×100㎝) ‘점으로부터’(1975)는 7억원에, 서울옥션에 나선 김환기의 ‘매화와 달과 백자’(1950s)는 8억 6000만원에 각각 새 주인을 만났다. 대신 이우환의 출품작 중 서울옥션에서 이름을 올린, 이번 케이옥션에서 팔린 작품과 상당히 유사한 또 다른 30호(71.8×90.2㎝) ‘점으로부터’(1978)는 5억 70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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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판도를 뒤집은 MZ세대, 그들의 취향을 고려한 ‘못 보던 작품’으로 꼽혔던 미국 출신 작가 캐서린 번하드(47)와 우국원(46)의 작품들도 모두 팔렸다.
케이옥션이 내놓은 번하드의 ‘미국의 ET와 발렌시아가’(2019·152.4×121.9㎝)는 1억 2000만원, 또 서울옥션이 출품한 우국원의 ‘스타팅 오버’(2021·80.0×99.5㎝)는 7100만원을 부른 응찰자를 찾아갔다. 지난해 불현듯 ‘경매스타’로 떠오른 우국원의 작품은 케이옥션에서도 3점이 출품됐는데, ‘본파이어’(2019·60.6×72.7㎝)가 4400만원, ‘코끼리 되기’(2018·100×80.3㎝)가 6200만원, ‘슬립’(2019·130.3×162.2㎝)이 1억 4500만원에 낙찰되며 식지 않은 열기를 내뿜었다.
우국원과 함께 또 한 명의 ‘경매스타’로 부상한 김선우(34)도 싹쓸이 낙찰행렬에 동참했다. 서울옥션이 내놓은 ‘비상하는 세 마리 도도새’(2020·100×80.3㎝)가 5900만원, ‘정글의 기이한 순간’(2020·112.0×145.0㎝)이 4200만원에 팔렸다. 또 케이옥션이 내놓은 ‘관점에 대하여 Ⅲ’(2020·130.3×162.2㎝)는 5000만원, ‘달빛 아래’(2020·130.0×162.2㎝)가 5800만원을 부른 새 주인을 따라나섰다.
서울옥션의 올해 첫 메이저 경매였던 이번 경매의 낙찰총액은 약 173억원, 낙찰률은 81%였다. 케이옥션에서는 낙찰총액과 낙찰률 등 경매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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