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국의 판사이자 정치인이었던 윌리엄 블랙스톤의 말입니다. 사법 정의의 실현이 완전무결할 수 없다면 최소한 억울한 판결을 받는 이는 없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오늘날 영미권 법률에서 ‘블랙스톤 공식’이라는 표현으로 통하는 이 말은 현대 사법 체계의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인 ‘무죄추정의 원칙’과도 잘 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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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법 형사12부는 지난 17일 윤씨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과거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 및 제출 증거의 오류를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며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옥고를 거치며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받은 피고인에게 사법부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이 선고가 피고인의 명예 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사죄의 뜻도 표했습니다.
재판부는 윤씨 사건 결정적 증거가 된 자백 진술이 “불법체포, 감금 상태에서 가혹행위로 얻어진 것이므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수사, 기소기관의 강압적 불법적 수사와 억지 기소를 사법부가 인정한 것입니다. 피고인 무죄 주문이 낭독되자 윤씨는 물론 방청객들도 손뼉을 치며 기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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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19년6개월을 복역한 윤씨는 17억6000만원 정도의 형사 보상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윤씨가 이번 무죄 판결을 바탕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수도 있습니다. 판결문에 수사기관 실책이 명시되었기 때문에 형사보상금에 준하는 정신적, 신체적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리라는 전망입니다.
다만 당사자는 보상금보다도 국가가 자신의 무죄를 선언한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습니다.
윤씨는 이날 향후 계획에 대해 “살면서 생각해보겠다. 보상 문제도 잘 모르겠다”며 홀가분한 심경을 표현했습니다. “앞으로는 공정한 재판만 이뤄지는 게 바람”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지난해 화성 사건 진범 이춘재가 확인된 직후 곧장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미디어에 당당하게 이름과 얼굴을 공개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이런 태도도 이해가 갑니다. 무엇보다 수억 단위의 돈으로도 ‘무고한 이’의 고통을 보상할 길은 없다는 것을 20대의 젊은 시절을 옥에서 보내야 했던 그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