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들 다국적사 신약 '판권 구애' 후끈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국내제약사들의 단기 성장전략이 복제약(제네릭)에서 다국적제약사 신약 판매 대행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난해 최초로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한 ‘유한양행 따라하기’ 전략이 확산되는 추세다. 판권 경쟁 심화로 다국적제약사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독(002390)은 지난 10일 일본 미쯔비시다나베로부터 수입한 새로운 당뇨치료제 ‘테넬리아’의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이 제품은 인슐린 분비 호르몬 분해효소(DPP-4)를 저해하는 작용기전을 갖는 ‘DPP-4 억제계열’ 약물이다.

DPP-4 억제 계열 당뇨약 국내 판매현황 및 원외 처방실적(자료: 업계, 유비스트)

이로써 국내에는 총 7종의 DPP-4 억제계열 당뇨치료제가 등장하게 됐다. ‘테넬리아’를 제외하고 6개 당뇨치료제 모두 국내업체와 다국적제약사가 공동으로 영업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내제약사가 다국적제약사의 신약 판매에 집중하면서 7개의 제품을 두고 총 13개 업체가 영업하는 이례적인 대진표가 성사됐다.

국내업체 중 유일하게 LG생명과학(068870)만이 당뇨치료제를 개발했을 뿐 나머지 업체들은 다국적제약사의 영업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최근 국내제약사들이 단기성장을 위해 신약 도입에 나서면서 다국적제약사와 제휴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한독, 종근당(185750), 광동제약(009290), 한미약품(128940), 보령제약(003850), 안국약품, 녹십자 등 기존에 수입 신약 판권 확보에 소극적이었던 업체들마저 적극적으로 다국적제약사들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일동제약, CJ헬스케어, 안국약품 등은 다국적제약사의 제네릭 판매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지속적인 리베이트 규제와 과열경쟁으로 제네릭 시장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면서 캐시카우 전략이 도입 신약으로 이동한 것으로 풀이된다.

2015년 주요 공동판매 계약

업계에서는 지난 몇 년간 유한양행의 선전이 제약사들의 인식을 바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다국적제약사의 신약을 공동판매하면서 급성장해 지난해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이 가운데 베링거인겔하임과 길리어드로부터 도입한 ‘트윈스타’, ‘트라젠타’·‘비리어드’ 등 3개 제품으로만 249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영업력이 시장에서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인식이 컸지만 최근에는 얼마나 좋은 제품을 따내느냐가 실적을 좌우한다”고 전했다.

도입신약은 즉각 실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이에 따라 신약 판권 경쟁도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광동제약이 지난 10일 판권을 확보한 비만치료제의 경우 국내업체 5곳 이상이 판권 경쟁에 가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국적제약사 한 관계자는 “신제품 출시가 예고되면 국내제약사들로부터 무더기로 러브콜이 쏟아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면서 “한국 제약사와 공동으로 판매하면 매출이 급증하기 때문에 본사에서도 제휴를 선호하는 분위기다”고 설명했다.

다국적제약사 입장에서는 국내업체의 과열 판권 경쟁이 반가울 따름이다. 거래 조건을 최대한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국적제약사가 제휴 파트너를 바꾸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과거 CJ가 판매했던 다케다의 감기약 ‘화이투벤’은 지난해부터 일동제약이 팔고 있다. 2008년부터 대웅제약이 팔았던 골다공증치료제 ‘포사맥스’는 지난해부터 한미약품이 판매 중이다.

국내업체 한 개발본부장은 “국내업체들의 판권 도입 과열경쟁으로 계약 조건도 점차 다국적제약사에 유리하게 반영된다”면서 “최근에는 도입신약을 판매해도 남는 것이 없다는 얘기마저 나오지만 실적 때문에 판권 계약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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