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4월 13일자 38면에 게재됐습니다. |
여당의 '단독 과반'으로 끝난 4.11 총선 당일, SNS와 인터넷 공간은 종일 북새통이었다. 개념 연예인과 유명 트위터러에 갑남을녀까지 가세해 아침부터 인증샷을 올리며 투표를 채근해댔다. 투표율 70%를 넘기면 대한민국에선 '개콘'(개그콘서트) 저리가라 할 정도의 쇼가 펼쳐질 것 같았다.
전국 투표율은 54.3%. 이벤트는 무위로 끝났다. 낮은 투표율이 아쉬웠던 것일까. 오후에 루머가 나돌았다. 강남 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타워팰리스 투표율이 78%를 넘었다는 것. 강남 1%들이 표를 결집하는데 99%는 뭐하고 있느냐는 질타가 SNS를 날아다녔다. 그런데 팩트(fact)가 틀렸다. 지역 선관위 말로는 당시 타워팰리스 투표율은 40%가 안됐다.
루머는 저녁 무렵에도 떴다. '20대 투표율이 27%인데, 이중 남성 투표율은 48%, 여성 투표율은 8%'라는 내용. '이게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현실인가'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것도 안 맞았다. 연령대별 투표율은 선거후 한달쯤 지나야 나온다는 게 선관위의 설명이다.
이런 루머가 횡행할 만큼 투표율은 대한민국 선거에서 중요하다. 여야의 희비가 엇갈리고, 의회권력의 지형이 달라진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의 투표율(55.2%)은 전국 평균을 웃돌았고, 지난 총선 대비 10%p 가량 높았다. 서울에서는 ’정권 심판론‘이 먹혔고, 여당은 고전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선에서 박원순 시장을 당선시키며 주목받았던 2040의 표결집이 재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영남과 강원, 대구, 부산에선 여당이 의석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보수세력과 장년·노인층이 2040을 의식, 표심을 모은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안타까운 건 우리나라 투표율이 해외 주요국에 비해 크게 낮고, 선거별로 들쑥날쑥해 변동성이 심하다는 데 있다. 지난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 투표율이 70%를 넘는데, 한국은 약 57%에 불과하다. 30개 회원국중 26위로 꼴찌 수준이다. 어떤 선거에선 세대별 표심이 먹혀들고, 어떤 선거는 지역주의 벽에 철저히 가로막히기도 한다. 그래서 정책 대결과 비전 제시 보다는 상대에 대한 비방, 과거 들추기 같은 네거티브가 난무하기 일쑤다.
투표 참여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천부(天賦)의 권리가 아니다. 성별과 인종, 부(富)를 차별하지 않고 선거권을 주는 보통선거는 피의 역사를 거쳐 현대에 들어서야 겨우 쟁취한 것이다. 누구나 때가 되면 부여받는 권리여서일까. 소중한 권리를 포기하는 이들이 적잖다. 젊을수록 그렇다. 거리에서 돌멩이를 던지고, 광장에서 머리를 삭발하는 것보다 표를 통해 얻는 게 훨씬 더 많고, 비용도 적게 드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한 정치학자는 투표를 ‘종이 돌멩이(paper stone)’로 표현했다. 1980년대 중반,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대학에 입학했고 ‘짱돌’도 쥐어봤다. 짱돌보다 종이 돌멩이의 위력이 더 크다는 건 개인적 경험으로 체득한 인식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무한경쟁과 자기계발을 요구받으며 때론 좌절하고, 때론 분노하는 우리 젊은이들이 이제는 종이 돌멩이 활용법을 알 때도 되지 않았나. 그게 아쉽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