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해링 권유로 캔버스 작업한 크래시
호크니 수영장에 셸 석유 쏟아낸 제우스
전단지 겹겹이 모아 얼굴 새겨넣은 빌스
아트스페이스 선 개관전 '스트리트 아트'
페어리·뱅크시·존 원도…80점 걸고 세워
| 서울시 중구 통일로 KG타워에 최근 문을 연 아트스페이서 선의 개관전 ‘스트리트 아트’에 전시한 제우스의 작품 ‘오일 페인팅 셸’(2015). 데이비드 호크니의 회화 ‘더 큰 첨벙’(1967)을 배경으로 석유회사 셸의 ‘흘러내리는 로고’를 박고, 파괴되는 환경을 고발했다(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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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문화재단이 최근 문을 연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 개관전은 현대미술의 총아로 꼽히는 ‘스트리트 아트’다. 세계서 손꼽히는 거리예술가 6인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움직였는가. 6인 아티스트가 선명한 메시지를 만들어낸 그 배경을 살피는 시리즈를 2회에 걸쳐 이어간다. 두 번째 회는 존 마토스 크래시, 제우스, 빌스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 열세 살 꼬마에게 이보다 신나는 일은 없었다. 뉴욕 지하철에 몰래 잠입해 스프레이로 ‘낙서’를 냅다 휘갈기곤 후다닥 도망가는 일 말이다. 꼬마의 이름은 존 마토스 크래시(60).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늘 붙어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키스 해링(1958∼1990)과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라고 했다. 1970년대 미국사회는 어수선했다. 소련(옛 러시아)과는 냉전 중이고 베트남전은 막바지였다. 연거푸 터진 중동발 오일쇼크에 경제가 휘청거릴 때였다. 꼬마가 살던 뉴욕 사우스 브롱크스는 중산층과 노동계층이 섞여 살던 곳으로, 혼란한 사회상에 먼저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낙서는 그 시대상이었다. 꼬마들의 낙서가 그렇듯 크래시도 시작은 ‘이름 쓰기’부터였단다. 그러던 게 10대 후반인 1970년대 말에 이르자 급격하게 성장한다.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만화 속 캐릭터를 벽에 옮겨놓더니 기어이 ‘독창성’까지 발휘한 거다. 번뜩이는 ‘눈’을 주인공으로 번쩍이는 ‘섬광’을 배경으로 내리꽂는.
| 존 마토스 크래시의 ‘댄싱 인 더 레인’(2020·위)과 ‘더티 리틀 시크리츠’(2020). 캔버스에 스프레이로 채색한 작품이다. 특유의 번뜩이는 눈과 번쩍이는 섬광을 그려 넣었다(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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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가 쏟아붓던 어느 날 밤. 문득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창밖으로 그 비를 다 맞고 있던 수많은 광고판 말이다. 샤넬, 루이비통, 코카콜라 등등. 그런데 어째 그 기업로고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란 거다. 설마 진짜 울기야 했겠나. 흘러내리는 빗줄기 탓이겠지. 그런데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리퀴데이션 로고’(Liquidation Logo) 작업은 그렇게 시작했다. 대중에게 익숙한 기업·상품 브랜드의 로고에 ‘흘러내리기’ 기법을 접목한 작품 말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스트리트 아티스트 제우스(45) 얘기다. 본명은 크리스토퍼 슈왈츠.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제우스(Zevs: 읽을 때는 ‘Zeus’로 한다)란 예명을 쓴 계기도 범상치 않다. 열네 살이던 1991년 파리 교외 한 터널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지나가던 기차에 치일 뻔한 일이 생긴 거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그때 가까스로 사고는 모면했는데. ‘제우스’는 바로 그 기차의 이름을 거꾸로 붙인 거란다.
| 이데일리문화재단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 개관전 ‘스트리트 아트’ 중 ‘제우스’ 코너. 제우스 특유의 ‘리퀴데이션 로고’ 작품이 나란히 걸렸다. 왼쪽부터 ‘네이버’(2020·왼쪽부터), ‘샤넬’(블랙·2018), ‘무라카미 멀티컬러 화이트 리퀴데이티드’(2009), ‘샤넬’(화이트·2018), ‘LG’(2020)(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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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칠하는 것도 아니고 뿌리는 것도 아니다. 벽을 긁거나 파내 굳이 ‘상처’를 만들고 그 상처로 그림을 그린다. 풍경도 정물도 그리지만 단연 ‘인물’이다. 색도 없이 오로지 명암만으로 유명인의 초상을 벽에 새기는 작업을 한 거다. 덕분에 여느 그라피티 아티스트와는 분명히 다른 선을 긋는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빌스(34·본명 알렉산드레 파르토). ‘10대 낙서꾼’의 경력은 그도 두루 거쳤다. 포르투갈에서 난 그가 이후 영국 런던에서 대학을 다니며 그만의 ‘작품세계’를 도드라지게 만들 때까진. 2008년이 분기점이 될 듯하다. 정·망치·송곳·끌·조각칼 등 다양한 공구를 이용해 서늘한 눈빛을 가진 인물을 박아내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른바 ‘치즐링’(chiselling)이라 불리는 기법의 숱한 ‘제목 없는 초상화’들은 그렇게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건물 폐자재는 물론 거리에 더덕더덕 붙은 포스터를 긁어내 누군가의 얼굴을 새겨놓는 일도 일상이 됐다.
| 빌스의 ‘빔 시리즈 #1’(Beam Series·2020). 거리에서 수집한 광고전단지를 도려내는 기법으로 얼굴 형상을 빚어냈다. 망치·송곳·끌·조각칼과 레이저컷까지, 다양한 공구를 이용해 서늘한 눈빛을 가진 인물을 박아내는 ‘치즐링’(chiselling) 기법이다(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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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링·바스키아와 같이 ‘낙서’한 1세대 그라피티 아티스트
크래시의 ‘번뜩이는 눈, 번쩍이는 섬광’, 제우스의 ‘흘러내리는 로고’, 빌스의 ‘상처로 빚은 인물’.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이들이 시공간을 함께한다. ‘그라피티 아티스트’란 공통의 타이틀만으로, ‘벽에 낙서 좀 했던’ 10대의 경력만으로 묶어둘 수 없는 이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나란히 나섰다.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에 새롭게 문을 연 이데일리문화재단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이 개관전으로 마련한 ‘스트리트 아트’를 위해서다. 크래시의 캔버스작업 9점, 제우스의 평면작업 8점, 빌스의 평면·입체작업 7점을 걸고 세웠다.
크래시는 ‘그라피티 아트’의 선구자이자 1세대다. 그를 향한 느낌이 왠지 애잔한 건 그를 통해 그의 어린 시절 친구들이 보이기 때문일 거다. 단명한 해링이나 바스키아가 살아 있다면 딱 크래시만한 나이일 테니. 짧았던 그 시절, 세 사람이 제대로 뭉친 기회가 있었다. 1984년 프랑스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서 연 ‘5/5 피겨 리브레 프랑스-미국’ 전. 이미 유명해진 해링·바스키아에 이어 크래시까지 제대로 명성을 얻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이데일리문화재단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 개관전 ‘스트리트 아트’ 중 ‘존 마토스 크래시’ 코너.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벽화와는 달리 캔버스에는 압축한 주제어가 선명하다. 한 편의 광고인 듯 현란한 구성 위에 ‘미국색’이라 부르는 만화적 원색의 생명력이 꿈틀거린다(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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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시가 일찌감치 ‘캔버스 작업’으로 가지를 뻗친 것도 해링의 권유였다고 알려져 있다. 덕분에 뉴욕현대미술관, 브루클린뮤지엄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앞다퉈 소장할 수 있었는데. 이번 ‘스트리트 아트’ 전이 바로 그 대표작을 조명한다. ‘그루브 라인’(Groove Line·2020), ‘블루 러브 스트로크스’(Blue Love Strokes·2020), ‘댄싱 인 더 레인’(Dancing in the Rain·2020), ‘더티 리틀 시크리츠’(Dirty Little Secrets·2020) 등, 예의 눈빛과 섬광이 살아 있는 ‘뜨끈한 신작’들이다. 캔버스를 뜯어낸 벽 삼아 스프레이를 뿌려 완성한 ‘그라피티 아트’의 집요한 행보가 돋보인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벽화와는 달리 캔버스에는 압축한 주제어가 선명하다. 한 편의 광고인 듯 현란한 구성 위에 ‘미국색’이라 부르는 만화적 원색의 생명력이 꿈틀거린다고 할까.
◇무분별한 소비·개발을 고발하는 거리예술가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는 여지없이 소환된다. 제우스의 작품 속으로 말이다. 전시작이 특별한 것은 단순히 ‘눈물 흘리는 로고’ 이상의, 명작 미술품에 걸쳐둔 절묘한 페러디가 보인다는 건데. 가령 ‘오일 페인팅 셸’(Oil Painting Shell·2015)은 데이비드 호크니(84)의 유명회화 ‘더 큰 첨벙’(1967)을 배경으로 삼았다. 수영장과 맞붙은 집의 벽에 셸의 로고를 박고 그 로고에서 흘러내리는 ‘석유’가 수영장을 검게 물들이는 순간을 잡아낸 일종의 ‘고발’ 작업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와 브랜드 로고를 결합한 ‘비트루비언 맨 실버’(2009)란 작품도 단박에 눈길을 끈다. 한국의 서울전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작품도 있다. ‘네이버’(2020)와 ‘LG’(2020)다. 검은 눈물과 하얀 눈물 두 점으로 따로 작업해 건 ‘샤넬’ 연작(2018)과 함께 걸었다.
| 제우스의 ‘비트루비언 맨 실버’(2009).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와 브랜드 로고를 결합한 작품이다. 특유의 ‘흘러내리는 로고’ 외에 명작 미술품에 걸쳐둔 절묘한 페러디는 제우스 작품세계의 또 다른 결이다(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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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스의 작업은 좀더 역동적이다. 평면은 물론 도드라진 오브제가 조각 같은 입체감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벽을 깎아 거대한 인물상을 새겨왔던 그가 전시에는 소프트 버전이라 할 작품을 내놨는데. 거리에서 모은 광고전단지를 겹겹이 쌓아 레이저컷으로 도려낸 작품이 다수다. 그중 두툼한 골판지를 수십 장 겹쳐 30㎝ 두께로 붙여 세운 ‘카마다 시리즈 #29’(Camada Series·2020)는 가히 압도적이다. 특유의 ‘문짝 작품’도 있다. 손잡이와 열쇠구멍까지 달린 나무문 위에 점점의 상처를 내 눈빛이 선명한 얼굴을 새긴 ‘캐즘 시리즈 #6’(Chasm Series·2020). 이 역시 절정의 작업이라 할 거다. 이들 배경에는 도시개발로 인해 망가진 환경의 변화가 있단다. 쓰임을 다한 사물을 변형하거나 겹겹이 붙여내는 콜라주 기법은 그 영향일 터. 덕분에 그는 30대에 ‘가장 혁신적인 시각예술가’란 타이틀까지 꿰차고 있다.
| 빌스의 ‘캐즘 시리즈 #6’(2020). 손잡이와 열쇠구멍까지 달린 나무문 위에 점점의 상처를 내 눈빛이 선명한 얼굴을 새겼다. 쓰임을 다한 사물을 변형하거나 겹겹이 붙여내는 콜라주는 도시개발로 인해 망가진 환경의 변화를 보면서 비롯된 작업이다(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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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이들 세 아티스트 외에 이름만으로 세상의 눈과 발을 움직이는, 또 다른 거리예술가 3인이 합세했다. 얼굴 없는 화가로 유명한 뱅크시(48), ‘오베이 자이언트’로 더 잘 알려진 셰퍼드 페어리(51), 스프레이 페인팅 기법으로 추상회화까지 그려낸 존 원(58). 어느 나라 어느 거리에서도 결코 빠지지 않는 내로라하는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의 ‘위대한 조화’ 80여점을 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6월 2일까지.
| 이데일리문화재단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 개관전 ‘스트리트 아트’ 전경 중 일부. 가림벽 사이를 두고 빌스와 존 마토스 크래시 코너가 자리했다. 왼쪽으로 거리의 광고전단지를 모은 골판지 수십 장을 겹쳐 30㎝ 두께로 만든 빌스의 ‘카마다 시리즈 #29’(2020)가 보인다(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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