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진행중인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에는 특별한 문서가 있다. 이봉창(1901~1932) 의사가 남긴 선서문이다. 가로 20.1㎝·세로 32.3㎝의 섬유에 국한문 혼용으로 썼다. 본문과 인명·날짜는 먹색이 달라 시차를 두고 쓴 것으로 추정된다. 평시에는 복제본을 전시하나 임시정부수립기념일인 4월11일에는 원본을 전시할 예정이다.
선서문은 도쿄 거사 직전에 썼다. 1932년 1월8일 한인애국단원인 이봉창이 히로히토 일왕을 암살하고자 마차에 수류탄을 던진 사건이다.
이봉창 의사는 일명 ‘모던보이’다. 돈을 벌면 주색에 썼다. 일본인처럼 옷을 입었고 ‘기노시타 쇼조’라는 이름을 썼다. 낙천적이고 호방한 성격에 일본인들과 가까이 지냈다. 일본 총영사관에 드나들었고 일본인 경찰과 친우를 맺기도 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들은 그를 믿지 않았다. 1932년 1월8일 일본 도쿄에서 히로히토 일왕이 탄 마차에 수류탄을 던지기 전까지 말이다.
이봉창을 눈여겨 본 건 김구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들이 이봉창을 ‘왜영감’이라 부를 때 김구는 오히려 한인애국단에 가입케 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이봉창 의사의 거사는 당시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며 명맥만 유지하던 임시정부의 존재를 전세계에 알렸다. 또 훙커우 공원에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영향을 주는 등 독립운동사에 발자취를 남겼다.
문화재청은 이봉창 의거 관련 기록물인 ‘이봉창 의사 선서문’을 비롯해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는 이봉창이 의거를 위해 일본에 도착한 뒤인 1931년 12월 24일 중국 상하이에 머물던 김구에게 의거 자금을 부탁하기 위해 보낸 서신 일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