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동의 없이 법원에 합의금을 맡길 수 있는 형사특례 공탁제도가 음주운전자 감형을 위한 꼼수로 악용되고 있다. 법원이 공탁을 실질적 피해 회복에 준하는 긍정적 양형인자로 보면서다. 전문가들은 음주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공탁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11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달 형사공탁금 신청 건수는 2492건으로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시행된 지난 2022년 12월(1486건) 대비 68% 증가했다. 특례 시행 후 지난달까지 누적 4만618건의 공탁금이 신청됐지만 같은 기간 피해자가 공탁금을 찾아간 건수는 2만1429건으로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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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미래를위한청년변호사모임(새변)에 따르면 형사공탁 특례제도 시행 후 공개된 988건의 비재산 범죄판결(음주운전 포함) 분석 결과, 피해자 의사에 반한 공탁을 피해회복으로 간주해 법원이 일방적으로 감경한 사건은 약 80%에 달했다. 특히 선고 2주 전 기뤄진 기습공탁은 558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에 일부 변호사와 행정사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음주운전 범죄자를 겨냥한 감형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이 홍보하는 교통범죄 감형 패키지에는 공탁과 함께 반성문 대필, 음주운전 근절 서약서, 음주운전 교육 수료증, 캠페인 활동 증명서 등이 포함돼 있다.
익명을 요청한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 없이 철저히 감형만을 위해 작성한 반성문이 감형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게 여전한 현실”이라며 “피해자가 엄벌을 탄원하는 데도 공탁을 피해 회복으로 간주해 감형하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입장과 의사를 면밀히 고려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범죄별 보호법익과 피해양상을 고려해 보다 섬세한 양형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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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법무법인 에이시스 대표변호사는 “피해자 측에서 재판 중 형사공탁에 관해 수령 거절 의사를 미리 명확하게 밝히면 재판부에서도 양형에서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법무부 개정안에 따라 기습공탁 후 피해자 의견을 의무적으로 청취하는 등 피해자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