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은행도 ‘빅블러’ 합류…비금융업 진출 탄력 받나

이명철 기자I 2023.04.13 05:00:00

KB국민은행 ‘리브엠’ 통해 알뜰폰사업 진출 길 열려
종합서비스 제공하는 싱가포르, 지역상사 만드는 일본
편의성 강점 빅테크 대응, 신사업 모색 활발해질 듯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KB국민은행이 통신업에 본격 합류하면서 금융권의 사업 다각화에 신호탄을 쐈다. 그동안 금융회사들은 금융자본과 산업(비금융)자본간 결합을 제한하는 규제로 비금융분야 진출이 제한됐다. 하지만 금융권의 비이자이익 창출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금융당국도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이어서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플랫폼 목마른 은행, 40만 고객 알뜰폰 사업자로

금융위원회가 이번에 은행의 부수업무로 지정키로 방침을 정한 ‘간편·저렴한 금융-통신 융합서비스(알뜰폰 서비스)’는 지난 2019년 4월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사업이다. 당시 은행이 소비자에게 간편하고 저렴한 알뜰폰 서비스를 제공토록 통신요금제 판매 사업을 영위하게 하자는 취지로 특례를 부여했다.

국민은행은 은행 고객에 대한 추가 혜택을 주면서 금융과 통신 데이터를 통한 혁신적인 상품·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알뜰폰 사업인 ‘리브엠(Livi M)’을 시작했다. 이번에 부수업무 신청이 가능해져 특례가 아닌 정식 사업으로 영위할 수 있게 됐다.

알뜰폰 서비스가 은행의 부수업무로 지정됨에 따라 국민은행뿐 아니라 다른 은행들도 사업 참여를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당장 (알뜰폰 사업을) 하겠다는 은행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협업모델로 하려는 데는 있다”고 전했다.

현재 신한은행·하나은행은 알뜰폰 통신사들과 제휴 요금제를 출시하는 등 협업하고 있다. 농협은행도 알뜰폰 제휴서비스를 검토 중이다. 국민은행이 현재 40만 고객을 보유한 리브엠을 통해 사업 경쟁력을 키울 경우 다른 은행들도 독자적으로 부수업무에 나설 여지도 크다.

은행이 알뜰폰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디지털금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빅테크에 대한 대응 차원의 성격이 크다. 네이버나 카카오처럼 거대한 플랫폼을 보유한 빅테크들은 고객들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강점으로 지니고 있다.

반면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전방위적인 고객 접근 수단을 갖지 못해 상대적으로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열위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알뜰폰 사업을 영위하면 잠재 금융고객을 확보하고 기존 영업방식·시스템보다 저렴하면서 편리한 금융상품·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통신업의 고객 데이터를 통해 신용평가모형을 개선하는 등 기존 관행적인 영업방식을 혁신하는 효과도 있다.

◇“은행도 비금융 서비스 제공해 경쟁력 키워야”

이번 알뜰폰 사업의 사례는 은행의 첫 비금융업무 진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업계 반응이다. 금융당국도 금산분리 제도 개선을 주요 안건으로 지정해 비은행권의 업무영역이 확대될 가능성도 커졌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은 본궤도에 올라오면서 비금융사업의 본보기로 자리매김했다”며 “최근 금융사들이 이자수익에만 매몰된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다른 은행권 또한 새로운 알뜰폰 뿐 아니라 새로운 비금융사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이미 금융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은행들도 다양한 비금융 서비스를 갖춰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고금리 속 대규모 이자이익을 거둔 은행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해외 진출과 비이자이익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해외에서 글로벌 금융그룹과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통한 은행들의 금융-비금융 융복합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싱가포르 1위 은행인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은 규제 완화를 통해 융복합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제공하며 국내 은행의 롤모델로 꼽힌다. 싱가포르 금융당국은 2017년 은행이 비금융사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자 DBS는 부동산이나 리모델링, 헬스케어, 여행·레저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접할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란 서비스를 구축했다.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차원에서도 비금융업의 중요성은 크다. 일본은 지역경제활성화, 산업생산성향상, 지속가능사회 구축 기여 등을 영위하는 자회사를 둘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이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지역 상사나 탄소 중립을 위한 탄소배출량 측정회사 설립 등이 이어지기도 했다.

국내 은행들도 산업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강형구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권의 데이터 등 내부 자원을 개방해 디지털기업들을 은행의 생태계로 들어오도록 유도하고 은행 내 시스템을 별도 회사로 독립시켜 금융기관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플랫폼의 플랫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