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메디톡스(086900)는 최근 대웅제약(069620)이 자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혐의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법원에 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15일 밝혀졌다.
메디톡스는 이 소장에서 자사 전직 연구원이 대웅제약의 사주를 받아 보톡스 균주 및 균주 제조와 관련된 모든 정보(마스터 레코드)를 대웅제약에 넘긴 것으로 주장했다. 메디톡스가 소송 대상자로 지목한 대상은 대웅제약과 지주사인 대웅, 대웅제약의 미국측 파트너인 알페온 등 기업을 비롯해 윤재승 대웅 회장, 윤재춘 대웅 사장, 전 메디톡스 직원인 이모씨, 대웅제약 직원인 서모씨 등이다.
메디톡스가 이 소장에서 주장하는 균주 유출의 전모는 이렇다. 2007년 12월 메디톡스에 입사한 이모씨는 이 회사 보톡스 균주 세포은행에서 근무하면서 연구용 보톡스 균 반출 업무를 맡았다. 보톡스 균이 뽑은 독소를 제품화하는 데 필요한 공정에도 접근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 윤재춘, 윤재승 등 대웅제약 임원은 이씨의 대학 동기인 대웅제약 직원 서모씨에게 이씨를 통해 메디톡스의 보톡스 균주를 비롯해 이를 상용화하는데 필요한 공장설비, 제조시설목록, 제조기술 관련 자료 일체(마스터 레코드)를 확보할 것을 지시했다. 이씨는 2008년 초부터 2008년 8월 퇴사 전까지 메디톡스의 기밀 자료를 대웅제약 측에 넘기고 대웅으로부터 12만달러(약 1억3000만원)를 받았다. 이씨는 현재 미국의 한 대학에 유급 박사후과정으로 있다. 대웅제약은 회사와 밀접하게 연결된 이 대학 교수를 통해 이씨가 유급 박사후과정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하지만 대웅제약의 입장은 다르다. 대웅은 2010년 6월 경기 용인시 대웅제약 공장 근처 마구간 흙에서 보톡스 균을 분리배양하는데 성공했다고 미FDA와 한국 식약처에 보고했다. 이후 2013년 이를 ‘나보타’라는 보톡스제제로 상용화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두바이에서 열린 피부레이저학회에서 대웅제약 연구원은 나보타의 개발과정에 대해 발표했다. 이 자리에 있던 정현호 메디톡스 사장은 발표내용이 자사의 보톡스 내용과 너무 유사하다고 생각하고 대웅제약 연구원에게 몇가지 질문을 했지만 “기밀이라 말할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
메디톡스는 지난해 10월 나보타의 보톡스균 유전자 염기서열 정보가 메디톡스의 보톡스인 메디톡신 것과 동일하다며 대웅제약이 자신들의 기술을 도용한 것일지 모르니 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해 공개토론하자고 주장했다. 균의 염기서열은 생물체를 규정하는 고유한 정보이기 때문에, 이를 분석해 비교하면 대웅제약의 주장대로 직접 균을 찾은 것인지 메디톡스의 균을 도용한 것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대웅제약의 미온적인 대응으로 균주 기원 논란은 흐지부지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난 2월 메디톡스는 내부 조사를 통해 서씨가 대웅제약 안에서 ‘대학 동기에게서 보톡스 균주 얻었다’고 자랑하고 다녔으며, 퇴사한 이씨가 대웅제약 직원 서씨와 친구 사이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컴퓨터 시스템을 조사해 보니 이씨가 메디톡신의 마스터 레코드 여러 개를 복사했다는 것도 드러났다.
메디톡스는 소송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 “보톡스를 상용화하는데 17년이라는 시간과 수백억원의 비용이 들어갔다”며 “대웅은 자체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 실패위험 대신 메디톡스의 지적재산권을 유용해 회사에 금전적 손실을 끼쳤다”고 밝혔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일련의 증거들을 수집해 관련자료 일체를 미국 법원에 제출했다”며 “소송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웅제약은 “메디톡스가 소송을 통해 제기한 주장은 허구로 소송과정에서 모든 주장이 거짓임을 철저히 증명할 것”이라며 “지금까지는 대응할 가치를 못 느꼈지만 이번 소송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해 철저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톡스는 독소를 신경에 주입해 근육을 수축시키는 아세틸콜린을 차단하는 일종의 신경 마비제다. 세계 보톡스 시장 규모는 30억~40억 달러(약3조3000억원~4조4000억원)으로 추정되지만 2023년에는 60억달러(약 6조60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톡스를 만드는 공정은 이미 특허가 공개돼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재료인 보톡스균을 구하기 어려워 보톡스를 만드는 회사는 10여곳에 불과하다. 보톡스균은 생물학무기로 쓰일 수 있어 국가간 거래가 엄격히 통제되고 이동시킬 때에는 질병관리본부 같은 정부당국에 신고를 해야 한다. 전세계 보톡스 시장 점유율은 엘러간(74%)이 가장 높고 그 뒤를 그 뒤를 입센(15%), 멀츠(7%), 메디톡스(2%)가 추격 중이다.
메디톡스는 17년의 연구개발 끝에 2006년 국내 최초로 보톡스를 만든 회사다. 대웅제약은 나보타의 미국진출을 위한 임상시험을 지난해 종료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미국FDA에 판매허가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메디톡스 고위 관계자는 “보톡스 균주 출처 규명을 위해 휴젤을 대상으로 한 대응도 준비 중에 있다”고 말해 균주 기원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