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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최정희 경제정책부 차장, 정리= 최정희, 하상렬 기자] 한국은행이 올해 국정감사 기간에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주요국의 연도별 국내총생산(GDP) 갭(실질성장률과의 차이)’ 자료는 많은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1.9%로 추정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노동과 자본 등을 투입해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 없이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의미한다. OECD가 추정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에 못 미친 건 이번이 처음이다. OECD는 지난달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2.0%로 조정했지만,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성장동력이 빠르게 식고 있는 상황에서 1%대 재진입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올해 2% 성장을 해도 여전히 잠재성장률을 하회할 수 있다”고 밝힌 뒤로는 우리보다 덩치가 훨씬 큰 미국과의 잠재성장률 역전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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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한미 잠재성장률의 방향성을 가른 핵심 키워드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꼽았다. 이윤수 교수는 “미국은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성장산업으로 노동자들이 빠르게 옮겨갔다”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미국의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요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우리나라와 유럽 등은 노동시장의 안정을 택한 것이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선 정부의 산업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고영선 부원장은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많다 보니, 오히려 중소기업들이 성장하지 않고 머물러 있다”며 “중소,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대기업 규제가 필요한지도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열거된 것들만 허용하는 포지티브(positive) 방식의 현행 규제체계 하에선 기업가 정신을 발현하기 힘들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경엽 실장은 “100대 유니콘 기업 중 17개 가량이 한국에서 사업을 못한다”며 “구조조정을 통해 한계기업을 청산하고, 새로운 혁신 기업이 들어올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좌담회 주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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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당시 OECD는 내년 잠재성장률을 1.7%라고 전망했는데, 국제통화기금(IMF)은 2% 이상이라고 했다. 기관마다 모형이나 전제가 다르기 때문에 잠재성장률 추정에 조금씩 차이가 난다. 코로나19 영향이 아직 남아 있다고 보지만, 경기 변동적 측면이 강한지, 경제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일으켜 잠재 성장 경로 자체를 바꾼 것인지에 대한 데이터는 부족하다.
△이윤수= 잠재성장률이 1%대냐, 2%대냐를 떠나서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낮아진 것은 맞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으로 돌아가면 예전처럼 성장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코로나19 전에도 저성장에 대한 우려는 굉장히 컸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조경엽=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1990년대부터 5년에 1%포인트씩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다. OECD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10여년간 2.1%포인트 하락했다. 많이 떨어졌다고 하는 독일도 0.5%포인트 하락에 그쳤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의 잠재성장률은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 가계부채, 노동시장 경직성, 기업가 정신 훼손 등의 문제로 앞으로도 잠재성장률이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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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미국은 작년 65세 인구 비중이 약 18%이고, 유럽 등 주요국들도 20%가 넘는다. 우리나라(18.4%)와 큰 차이가 없지만, 문제는 고령화 속도다. 우리나라는 출산율도 압도적으로 낮아 인구구조 변화가 성장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중장기적으로 미국 등 다른 선진국보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인구구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구조개혁을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세상이 달라졌다. 세계 경제 블록화, 고금리·고부채, 디지털 전환, 탄소중립 등에 어떻게 선제 대응하느냐에 따라 잠재성장 경로도 변화할 수 있다.
△이윤수= 유럽의 경우 단기적으로 회복이 느려지고 있다. 반면 미국 경제는 굉장히 강건해졌다. 노동시장에서 차이가 난다. 미국 노동시장은 실업보험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업이 사람을 내보내는 데 부담이 없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실업률이 굉장히 높았는데, 이후 회복 과정에서 성과가 낮은 산업들이 정리되고 고성장 산업으로 노동자들이 빠르게 옮겨갔다.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고성장산업의 고용 비중이 상승했다. 이들 산업은 노동시간도 길다. 이런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로 미국은 한국, 유럽보다 경제 회복이 빠르고 성장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사회 안전망을 강조한 유럽은 보조금을 줘가며 고용 유지에 힘썼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고영선=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보면 미국이 독보적이다. 유럽과도 격차가 크다. 관건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다. 미국의 100대 기업 구성을 보면 20년새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유럽은 변화가 적었다. 과거 잘 나가던 기업들이 지금도 잘 나간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 중 어느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갈렸다고 본다. 결국 국민들의 선택이긴 한데, 경제·사회 구조가 유연하고 효율적인 쪽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조경엽=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계속해서 2%대 초반을 유지해왔다. 한미 잠재성장률은 현재 역전된 상태이며,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이 통과되면서 미국으로의 자금 유입이 두드러지고 있다. 2%대 잠재성장률을 유지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미국은 언제든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고 자유 시장 경제가 작동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갖췄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업가 정신을 발현하기 어렵다. 노동시장 유연성은 세계 꼴찌 수준(세계경제포럼 2019년 조사, 141개국 중 97위)이다. 가계는 부채 부담에 저축 여력도 없다.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잠재성장률이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 반등의 조건’ 좌담회③]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