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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은 혼외자의 존재를 고백한 만큼 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로 볼 수 있다. 이혼을 원하는 최 회장은 노 관장을 상대로 우선 쌍방책임의 주장 및 입증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혼인관계가 현재 사실상 파탄상태라는 점을 부각하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 최태원 “성격 차이 극복 못해”…‘쌍방유책’ 입증 주력
이혼소송 판결 때 적용하는 법리는 크게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로 나뉜다. 유책주의는 외도 등 혼인파탄 책임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논리다. 파탄주의는 현재 혼인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이면 부부 일방의 책임 유무와 관계없이 이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65년 이후 유책주의를 도입한 이래 혼인파탄 책임이 있는 사람의 이혼 청구를 대부분 기각하고 있다. 가부장문화아래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대법원은 2015년 9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유책주의를 재확인하긴 했지만 7대 6으로 좁혀진 상태다. 하급심에선 대법원 판례를 완전히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파탄주의를 일부 원용한 유책주의 판결이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책임 소재를 부부 한쪽에게만 일방적으로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성격이나 가치관 등 차이로 부부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혼 소송을 제기해도 ‘쌍방유책’으로 보고 이혼 청구가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서울가정법원은 남편의 과다한 음주와 신체비하 발언 등에 아내가 이혼소송(본소)를 제기하고 이어 남편도 이혼소송(반소)을 한 사건에서 본소와 반소에 대해 지난 5월 모두 인용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2016년 8월부터 현재까지 이혼을 전제로 장기간 별거하고 있다”며 “아내와 남편이 모두 이혼에 동의했고 오랜 소송으로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신뢰가 상실됐다고 보이는 점을 종합했다”고 판단했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유책주의의 형식적인 모습을 지키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부부 모두가 책임있다고 판단해 이혼청구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성격 차이 등을 이유로 우선 쌍방유책 입증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지난 2015년 12월 한 언론사에 보낸 편지를 통해 혼외자가 있다고 밝히며 이혼의사를 피력했다.
◇ 대법원 구성 변화, ‘파탄주의’ 인용될까…해외는 이미‘ 파탄주의’
최 회장의 또다른 변론전략은 파탄주의에 대해 대법원 판단을 받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최 회장이 이 재판을 대법원까지 이어갈 거란 관측이 많다. 최 회장은 “노 관장과는 오랜 시간 별거 중에 있다”며 혼인이 사실상 파탄 났음을 부각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5년 전합 판결에선 유책주의를 유지했지만 그간 대법관이 많이 바뀌어 변화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판결에 참여했던 13명 중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10명이 이미 퇴임했거나 퇴임할 예정이다.
당시 소수의견은 “혼인생활을 계속 강제하는 게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될 수 있는 경우에는 이혼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윤미 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법조계에서는 여성의 경제적 활동이 급증하는 등 달라진 사회 변화를 고려해 파탄주의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장 이사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대법원 구성이 진보적 성향 대법관으로 바뀔 경우 파탄주의 도입 가능성도 열려있다”고 덧붙였다.
영미법과 대륙법 모두 이미 이혼을 폭넓게 인정하는 파탄주의를 채택해왔다. 영국과 독일 등은 입법을 통해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결혼관계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이른바 ‘가혹조항’을 두어 상대방이 이혼으로 고통받지 않는다고 판단돼야 유책배우자의 이혼을 허용하는 보호장치를 뒀다.
미국도 유책주의를 고수해오다가 1969년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1985년 사우스다코타주까지 모든 주에서 파탄주의를 도입했다. ‘화해할 수 없는 차이’, ‘회복할 수 없는 파탄’, ‘일정 기간 별거’ 등이 이혼사유로 가능하다. 한국 유책주의의 모델인 일본도 1985년 사회 변화를 반영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도 인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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