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내가 작업을 하는 것은 이 모든 두려움에 대한 도피요 피난이다. 그것은 아편쟁이의 아편이요, 횡행하는 모든 종교요, 춤바람이고 도박이다. … 어쨌든 내 짧은 개인사의 우연과 필연의 결과로서 나는 현재 이 일을 하고 있으며, 기왕 칼을 뺐으니 두부라도 썰겠다는 심정으로 칼을 뺀 내가 부끄러워 작업에 매달리는 것이다”(한애규 ‘여행이란 이름의 사색의 시간’ 중에서).
붉은 황토, 희멀건 한 황토. 제 각각의 색을 입은 몸뚱이를 드러낸 조각상이 줄지어 섰다. 이들은 저 멀리 한 곳에 시선을 박은 채 어디론가 향해 가는 중이다. 저돌적인 행군은 아니다. 다소곳이 다리 위에 두 손을 내린 채 한 발씩 조심스럽다. 채 1m가 안 되는 아담한 크기. 돌로 철로, 흔히 거대하고 단단한 조각상으로 내리누르는 위압감 따위는 없다.
조각가 한애규(65). 그이는 흙 작업을 한다. ‘테라코타’, 흙을 빚어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는 그것만 고집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라고 기억하니 30년을 훌쩍 넘겼다. 실험과 고안, 스스로 터득한 방법을 키우고 심화시키며 그이만의 특별한 조형언어를 쌓아왔다.
그 세월 동안 고집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여인상이다. 질박하고 푸근한 여인의 외형으로 그이는 인생을 표현한다. 한 작가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풍만한 가슴과 배, 엉덩이, 또 절대로 넘어지지 않을 튼튼한 다리를 가졌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 여인들은 결코 자신을 위해 이런 몸을 만들지 않는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참고 싸우고 부풀린, 척박하고 고단한 삶이 쌓은 몸뚱이인 거다.
|
굳이 여인상이 아니더라도 그이의 작품은 각지고 모난 데가 없다. 은근한 곡선미를 자랑하듯 모든 형상은 물 흐르듯 제 몸을 세상의 흐름에 뚝 떨군다. 두리뭉실하고 단순하다. 질박하고 푸근하다. 부드럽고 따뜻하다.
△끊어진 북방길 잇는 여인·반인반수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 펼친 한 작가의 개인전 ‘푸른 길’. 한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을 법한 한 작가의 테라코타 조각상 40여점이 나들이를 나왔다.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건 줄잡아 15점은 넘게 무리지어 나선 긴 ‘행렬’. 둥글둥글한 여인상을 빚은 ‘조상’(2018) 시리즈를 앞세우고, 반은 사람이고 반은 동물인 반인반수의 ‘신화’(2017) 시리즈, 소와 말 등 인간과 친밀한 가축을 다듬은 ‘실크로드’(2017) 시리즈 등이 한무더기다.
이번 전시에는 한 작가는 고유의 여인상 외에 특별한 소재 한 가지를 더 보탰는데. 가슴 위로는 사람이고 가슴 아래로는 동물인 ‘반인반수’ 상이다. 얼굴과 가슴은 천상 여인이나 네 발과 꼬리를 단 소와 말이 여럿이다. “기마민족의 흔적을 짚어보자 해서 말을 끌어왔고, 소는 사람과 친하니까 당연히 뒤따라오지 않았을까” 해서 세웠단다.
|
|
그래. 그렇다면 이 행렬은 어디를 떠나 어디로 가는 중인가. 인류문명의 교류가 시작됐던 그 길이었다. 이들은 서역을 떠나 우리 땅 한반도로 이동하는 중이다. 왜 굳이? 이들의 ‘행렬’에는 배경이 있다. 7∼8년 전 읽은 책 한 권이 모티브가 됐단다. ‘실크로드를 달려온 서역인’이었다는데, 내용 가운데 끝간 데 없이 뻗어 나간 옛 신라인의 행보가 좋았나 보다. “아주 오래전 우리의 교역길은 중국이나 만주 이상이더라. 북방으로 훤히 열려 있던 길이 남북분단 탓에 너무 좁아졌다.” 섬 아닌 섬이 돼버린 한반도가 안타까웠다는 얘기다.
늘 품고 있던 그 생각이 이제야 작품으로 터져 나왔다. 2016년 늦은 겨울부터 2017년 여름까지, 1년 8개월여에 걸쳐 완성한 ‘행렬’에는 한반도에서 북방으로 향하는 길이 다시 이어지길 소원하는 한 작가의 마음이 들어찼다. “그저 막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그이의 바람이 온전히 삐져나온, 사람과 동물·문화가 교류했던 과거 행렬을 상상 속에서 빼낸, 시간과 역사의 흔적인 것이다.
|
△흙 향한 진정성…작가 빼닮은 여인들
3년여 만에 같은 장소에서 여는 개인전에서 한 작가는 지난 전시 ‘푸른 그림자’에 이어 ‘푸른’을 그대로 가져왔다. ‘푸른’은 조각상에서 유달리 시선을 끄는, 흙색 사이에 끼인 화룡점정 같은 푸른 유약을 의미한다. 여인들의 발밑에, 반인반수의 눈동자에, 기둥 조각에 보일 듯 말 듯 고인 그 푸른색. 한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류문명의 교류가 진행된 길에 놓였던 ‘물의 흔적’이다. 그들이 건넜거나 보았거나 만졌거나 마셨거나 발을 적셨던 그 흔적.” 그래서인가. 한 작가는 그 ‘푸른’에 ‘터키청’이란 유약을 쓴다고 했다. 옛날 서역인이 출발한 곳이 바로 터키 언저리라고.
“흙 주무르는 게 너무 좋아 시작했다. 흙을 만지고 있으면 평온해지고 촉촉해진다. 하지만 즐거움이 두 개라면 고통은 여덟 개쯤.” 작가의 테라코타 작업은 획기적이었다. 하지만 좋게 말해 ‘획기적’이지 선·후배와 동료 사이에선 ‘왕따’ 감이었다. 유약도 바르지 않는 흙 작업이라니, 아마 조각의 품격을 떨어뜨린다고 생각들 한 모양이다. 웬만해선 못 견뎠을 그 작업을 한 작가는 해냈다. 평생 그이를 키운 유일한 스승이라는 “고고학 인물들”을 벗 삼아.
|
|
하지만 작업이 결코 만만치 않다. 흙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구워내는 가마의 온도가 중요하단다. 보통은 소성온도 1000~1200℃ 정도로 작업한다. 온도가 높을수록 흙은 하얗게 변하고. 한 작가 자신이 털어놨듯 1000℃ 정도서 구운 흙이 부드럽기는 어렵다는데, 그이의 작품에서 거친 느낌을 찾아내는 건 더 어렵다.
한 점을 제작하는 데는 대략 30∼40일쯤 걸린단다. 20∼25일간 빚고, 보름은 말리고, 가마에 넣어 사나흘쯤 구워내고. 그중 한 작가가 유독 신경을 쓰는 것은 ‘표정’. 작품에 표정을 만드는 날에는 긴장감이 여느 날과 다르다고 했다. 심호흡을 하고 주변을 정돈하고. “어떤 날은 한 번에 긋고 다듬기도 하는데 어떤 날은 수십 번을 그어도 원하는 표정이 나오질 않는다. 그날은 그냥 깨끗이 접는다.”
비단 표정뿐이겠나. 살려내는 것보다 깨버리는 게 더 많을 건 굳이 세어봐야 알 수 있진 않을 것이다. “석기시대 도공, 중국 진시황릉의 병마용을 만들어낸 노동자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흙을 향한 진정성. 그 하나만으로 빚어낸 ‘서역에서 온 여인들’은 한 작가를 무척 빼닮았다. 전시는 7월 19일까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