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자동차 급발진 연구회(회장 김필수 대림대 교수)가 세계 최초로 자동차 이상에 의한 급발진을 인정하고, 그 원인으로 브레이크 진공식 배력 장치를 꼽았다. 단순한 운전자 과실인지, 차량 결함인지를 두고 급발진 논란이 재점화됐다.
‘브레이크 진공식 배력(倍力) 장치’란 말 그대로 진공을 이용해 브레이크의 힘을 키우는 장치다. 이 장치 덕분에 페달을 살짝 밟아도 묵직한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것이다. 1970년대 미국을 시작으로 장착되기 시작했다.
브레이크 진공식 배력장치가 엔진에서 발생하는 압력을 통(흡기다기관)에 저장했다가 이용한다. 브레이크로 가야 할 통의 압력이 희박한 조건으로 그 반대인 엔진으로 역류하면서 엔진의 문(스로틀 밸브)이 열리게 된다. 급발진 연구회측은 전자적 오작동이 겹치며 연료가 분사되고, 급작스런 엔진 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연구회는 이 같은 가설을 ‘압력 서지’(pressure surge)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회는 급발진 추정 사고가 이 장치가 도입된 1970년대 이후 보고됐고, 신고 사고의 약 80%가 가솔린 모델에서 나왔다는 공통점을 꼽았다. 디젤 엔진에는 스로틀 밸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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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발진 추정 사고는 30년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국내에선 블랙박스와 CCTV를 통해 다수의 급발진 의혹 영상 때문에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 영상, 영상 속 차량에 브레이크 등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 이를 부추겼다.
그러나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국토교통부, 국립과학수사원을 비롯한 다수의 연구기관이 연구를 거듭했음에도 급발진을 증명할 수 없었다. 사고기록장치(EDR)에 브레이크를 밟은 기록이 없음을 이유로 ‘차량 결함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결론만 되풀이했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충돌 땐 기계적 관성력에 의해 브레이크 등이 켜질 수 있다는 것도 시험을 통해 증명됐다.
급발진 추정 사고가 날 확률은 지난해 국내 기준으로 100만분의 8(0.0008%)이다. 지난해 1800만대의 차량이 등록된 가운데 136건의 의심 사고가 접수됐다. 급발진에 대한 또 하나의 새로운 원인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기계적 결함인지, 아니면 운전자의 오작동인지 논란은 좀 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