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사과 값 치솟는데…레드키위 ‘혁신 과실’ 따는 제스프리[르포]

남궁민관 기자I 2024.04.12 00:00:02

수급 안정·농가 수익 담보 위해 탄생한 제스프리
“조합 구성원간 수평적 협력 신뢰로 신품종도 성과”
병충해 맞선 썬골드키위로 10년새 매출 3배 껑충
“루비레드키위 생산·품질 ‘쑥’”…韓 비롯 세계 공략 착착

[타우랑가(뉴질랜드)=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한가로이 양떼가 풀을 뜯는 벌판 옆 방풍림 안으로 들어서자 맑은 하늘을 향해 치솟은 캐노피를 따라 싱그러운 덩쿨이 줄기를 뻗고 있었다. 탐스러운 키위들이 빼곡하게 열려 있었는데 씨알 굵은 몇 개를 따 반으로 자르니 웬걸 녹색도, 황금색도 아닌 강렬한 빨간색 속살이 드러났다. 십수년의 품종 혁신의 노력 끝에 최근 우리나라에도 첫 발을 디디게 된 제스프리 ‘루비레드키위’다.

지난달 5일(현지시간) 뉴질랜드 타우랑가 일대 농장에서 만난 이곳 농장주 제프 로데릭씨는 전에 없던 신품종 키위 개발을 위해 2016년부터 4958㎡(1500평) 규모의 농장에 과감히 투자했다. 그린키위와 썬골드키위 등 확실한 수입원이 있음에도 자신이 속한 제스프리에 대한 ‘신뢰’가 투자의 바탕이 된 셈이다.

뉴질랜드 타우랑가 일대에서 43년째 키위 농장을 운영 중인 농장주 제프 로데릭씨가 제스프리 ‘루비레드키위’를 소개하고 있다.(사진=남궁민관 기자)
뉴질랜드 제스프리 루비레드키위 단면. 완전히 익으면 빨간색이 더욱 진해진다고 한다.(사진=남궁민관 기자)
◇“합리적 수익 보장”…신뢰의 제스프리 시스템

지난해 키위만으로 무려 39억2000만 뉴질랜드달러(한화 약 3조2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뉴질랜드 제스프리 농가의 혁신은 최근 세계를 시름케 한 이상기후 영향권 밖이었다. 사과·배 값 폭등으로 최근에서야 안정적 과일 수급과 농가 수익 담보가 사회적 과제로 떠오른 우리나라와 달리 뉴질랜드는 일찌감치 지난 1997년 기업형 농가 협동조합 형태의 제스프리를 탄생시켰다.

워렌 영 이머징 마켓 파이낸스 매니저는 “제스프리는 농가에 혜택만을 보장하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새로운 키위 품종을 개발하고 재배법을 연구하는 ‘키위육종센터(KBC)’를 시작으로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고 이를 도입하는 농가 △키위 숙성도를 감별해 수확시기를 정해주는 ‘힐 연구소’ △수확한 키위를 선별해 포장·유통하는 ‘팩하우스’ △그리고 마케팅과 함께 이 모든 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제스프리 본사까지 수직적 소유·지배 구조가 아닌 협력사 관계로 수평적 협력이 이뤄지는 식이다.

로데릭씨는 “고품질의 키위를 재배하면 합리적인 공급가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어 농가 운영이 지속가능하다”며 “힐연구소로부터 수확 승인을 받지 못한 경우라면 전적으로 관리를 잘하지 못한 농가의 잘못이 클 것”이라고 제스프리 시스템에 전적인 신뢰를 나타냈다.

뉴질랜드 타우랑가에 위치한 제스프리 팩하우스에서 한국으로 수출할 ‘루비레드키위’를 포장하고 있다.(사진=남궁민관 기자)
◇“역사상 최악의 시기, 신품종으로 극복”

제스프리 브랜드 아래 각 협력 주체끼리 탄탄한 신뢰감을 구축해 루비레드키위와 같이 최대 20여년의 긴 시간이 걸리는 신품종 개발도 가능했다.

특히 신품종은 오히려 이상기후와 병충해를 극복하고 뉴질랜드 키위 시장을 지속 성장시키는 핵심 동력이 되기도 했다. 영 매니저는 “2010년께 원인 불명의 키위 궤양병(Psa)이 번지면서 대부분의 키위나무가 괴멸하는 뉴질랜드 키위 농가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가 전개됐다”며 “당시 KBC가 개발을 마치고 상업화를 준비 중이던 썬골드키위가 기존 그린키위에 비해 Psa에 더 강하다는걸 확인하고 2014년까지 3년여에 걸친 대대적인 품종 교체를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제스프리 매출은 2014년 시즌 15억7000만 뉴질랜드달러에서 10년 만인 올해 3배 가까이 뛴 45억 뉴질랜드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루비레드키위의 한국 본격 수출 등 올해 또 다른 도전을 앞두고 팩하우스와 힐연구소 현장에서도 준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힐연구소 현장에서는 키위 숙성도 감별을 위한 다양한 테스트가 전개되고 있었다. 각 농장에서 가져온 키위 샘플들을 쌓아두고 크기를 재거나 껍질 일부를 까 단단함과 색상, 브릭스(Brix·당도)를 확인하고 있었다. 다른 한켠에 마련된 보관실에선 키위의 수분을 제거해 무게를 재는 ‘건물중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브랜드 스티븐즈 지점장은 “브릭스는 현재의 당도를 나타낸다면 건물중 테스트는 키위가 익은 후의 당도를 예측하는 중요한 테스트”라고 설명했다.

팩하우스에서도 수확한 키위에 대한 품질 검사가 재차 이뤄지고 있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사이로 직원들이 일일히 육안 검사를 진행하는 한편 초당 30번의 촬영이 가능한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외부 흠집부터 내부 무른 정도까지 파악해 분류한다고 했다.

크리트 아쿠하타 팩하우스 데이터 관리자는 “수출용은 1등급만 키위만 선별해 나간다”며 “루비레드키위 생산은 2021년 7만 트레이(1트레이=3.5㎏) 수준에서 올해 100만 트레이 이상으로 늘었으며 과실 크기도 썬골드키위만큼 커졌다”며 안정적 수급과 품질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뉴질랜드 타우랑가에 위치한 제스프리 힐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키위의 경도를 테스트하고 있다.(사진=남궁민관 기자)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