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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군사합의, 결국 북한군 '통로'만 열어주고 끝?[김관용의 軍界一學]

김관용 기자I 2023.11.26 08:00:00

北 군사정찰위성에 南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
합의 안지킨 北, 기다렸다는듯 "전면 폐기" 선언
군사합의 초기에만 '반짝' 이행, 이후엔 지지부진
비핵화 전제 군비통제 추진, 결국 北만 '이득' 꼴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21일 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이후 우리 정부는 22일 9.19 군사합의 중 일부 조항에 대한 효력을 정지시켰습니다. 다음은 23일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과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나눈 대화 중 일부입니다.

Q: 북한의 GP(감시초소) 수가 대한민국과 비교했을 때 몇 배 더 많습니까.

A: 3배 정도입니다.

Q: 북한이 3배가 더 많은데, GP를 균형적으로 맞춰서 11개씩 9.19 군사합의를 하면서 파괴했죠. 이게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A: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Q: 3배가 많은데 어떻게 절대적 수치로 하냐는 거죠.(중략)이 GP 복원할 생각은 있습니까.

A: 검토해 나가겠습니다.

◇GP 수 3배나 적은데도…1:1 철수

지난 2018년 4월 27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판문점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여기에 명시된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 실현을 위한 조치로 남북 군 당국은 GP 철수를 추진합니다. 시범적으로 남북 간 GP 거리가 1㎞ 이내에 있는 곳 11개를 우선 없애기로 했는데, 이중 1곳은 병력과 장비는 철수하되 원형을 보존키로 했습니다. 향후 전체 GP를 없애 말 그대로 비무장지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9.19 군사합의’ 이행에 따라 인원과 장비는 철수하고 원형만 보존된 강원도 고성GP 외관 모습 (이데일리 DB)
DMZ는 군사분계선(MDL) 기준 남북 2㎞ 지역입니다. 이 구역내 총 4㎞ 지역은 정전협정을 관리하고 있는 유엔군사령부 규정에 따라 원칙적으로 무장병력을 투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산과 계곡 등의 자연 장애물로 북방한계선에서 남쪽을 감시하기 여의치 않자 DMZ 안에 GP를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군도 남방한계선(GOP)을 넘어 GP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이 남침용으로 파 내려온 4개의 땅굴 때문에 해당 지역의 우리 군 GP는 땅굴 이북 지역으로 더 나가 있습니다.

문제는 GP에 대해 남북간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군은 GP를 우리 군의 GOP 처럼 운용하고 있습니다. GP는 기본적으로 DMZ 내에서 적의 활동을 감시하고 조기경보 임무를 수행하는 초소입니다. 반면, GOP는 남방한계선의 철책선을 감시하며 적의 기습에 대비합니다. 이 때문에 철책선도 3중으로 쳐져 있고, 과학화경계시스템으로 24시간 주시하고 있습니다.

북한군은 282개소의 GP와 관측소(OP)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군의 DMZ 내 GP와 OP는 100여개로 수적으로 북측의 약 3분의 1수준입니다. 특히 북측은 박격포 진지 234개소, 고사포 진지 92개소, 대전차포 진지 28개소 등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남북한이 1대1로 GP를 감축할 경우 상대적으로 우리 군 전력이 더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은 이유입니다. 이에 따라 당시 ‘남북이 상호주의 비례성 원칙에 따라 구역 기준으로 GP를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결국 똑같이 11개씩을 없앴습니다.

◇DMZ 지뢰 개척, 한강하구 정보 제공

게다가 판문점 선언에 따라 MDL 일대에서의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가 중단 됐습니다.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과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 등을 홍보하는 확성기 방송은 우리 군의 대표적인 심리전 수단입니다. 일부 북한군인들은 우리 군의 대북확성기 방송을 듣고 탈북했다고 진술할 정도로 심리전 효과가 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지난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에 대응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11년만에 재개할 당시 북한은 포격 도발을 하는가 하면, ‘준전시상태’를 선언하며 우리 군에 강한 압박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2018년 11월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남북 도로개설 당시 MDL 북측 지역에서 북한군이 도로연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또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즉 9.19 군사합의에 따라 DMZ 내 화살머리고지 일대 공동유해 발굴이 진행됐습니다. 화살머리고지는 휴전 직전이었던 1953년 6월29일부터 7월11일까지 국군 제2사단이 중공군 제73사단 병력과 두차례에 걸쳐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곳입니다. 지형이 화살머리모양으로 돌출돼 있어 화살머리(Arrow Head)라 불렸습니다. 공동유해 발굴을 위해 남북한 도로를 연결하기로 했는데, 최대폭 12m의 비포장 전술 도로를 만들면서 이 지역의 지뢰들을 제거했습니다.

이에 더해 남북한 민간 선박의 공동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한강하구 공동수역화 사업도 진행됐습니다. 한강하구 수역은 강화도 서쪽 끝 말도리섬에서 경기 파주시 임진강 입구까지 총 연장 약 70㎞ 수역입니다. 이곳은 남북 민간선박의 항행이 가능하지만, 남북 간 분쟁 가능성이 높은 ‘민감 수역’으로 분류돼 양측이 사실상 출입하지 않았던 곳입니다.

그러나 9.19 군사합의에 따라 한강하구 지역에 대한 공동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이를 통해 남북은 선박이 가장 두려워하는 거대 암초 21개를 찾아내 그 위치와 대략적인 크기를 확인했습니다. 또 7개 주요 해역에서 해면이 1일 2회 주기적으로 오르내리는 조석을 관측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강하구 해도는 북한에 전달됐습니다.

2018년 11월 5일 ‘9.19 군사합의’ 이행을 위한 남북 공동 수로 조사 첫 날 양측 조사단이 한강하구에서 조우하고 있다. (이데일리 DB)
◇먼저 합의 어겨놓고 책임 떠넘기는 北

이게 마지막이었습니다. 2019년 1월 30일 판문점에서 남북 공동수로조사 결과를 토대로 제작한 한강하구 해도를 받은 이후 북한은 9.19 군사합의 이행을 사실상 중단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원활치 않아 그래보였지만, 결국 비핵화 협상이 좌절되면서 9.19군사합의 후속조치들이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 정찰위성 발사에 대한 상응 조치로 9.19 군사합의 중 접경지역 ‘비행금지구역’을 해제했습니다. 이에 북한은 아예 9.19 군사합의 전면 폐기를 선언했습니다. 북한은 이미 17건이나 합의사항을 명시적으로 위반했습니다. 포사격 및 포문 개방 금지 위반 건수까지 합치면 3600여건에 이르는데도 ‘대한민국 것들’ 때문에 합의가 사문화 됐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끝난 9.19 군사합의는 취지야 어쨌든지 간에 결과적으로 북한에만 좋은 합의로 전락했습니다. 우리 측 전방지역의 군사훈련 중단과 GP 철수 등으로 대비태세는 영향을 받았고, 한강하구 해도 제공과 지뢰지대 개척 등으로 북한군 침투로만 열어준 꼴이 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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