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전**’을 사용하는 누리꾼이 한 달 만에 침묵을 깬 윤석열 검찰총장의 발언 관련 보도에 남긴 댓글이다.
윤 총장은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직접 쓴 원고를 읽었다. 해당 원고에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한다”라는 내용을 담았다. 그는 형사법에 담긴 정신을 강조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세 차례나 언급했고 ‘독재’, ‘전체주의’ 같은 강도 높은 단어를 사용해 ‘진짜 민주주의’를 힘주어 말했다. 그러자 정치권에선 ‘관심법’을 쓴다고 주장한 궁예처럼 윤 총장의 속내를 꿰뚫어 보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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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잡이 귀환 환영”한 “통합당이 자주 쓴 표현”
진중권 동양대 전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와, 세다. 결단이 선 듯”이라며 “(윤 총장이 말한) 이 한 마디 안에 더불어민주당 집권 하의 사회 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다”면서 가장 빠른 반응을 보였다.
미래통합당도 곧바로 김은혜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민주주의의 당연한 원칙과 상식이 반갑게 들린, 시대의 어둠을 우리도 함께 걷어 내겠다”며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칼잡이 윤석열의 귀환을 환영한다”며 반겼다.
반면 민주당은 범여권인 열린민주당 지도부에서 날 선 반응이 나오는 가운데에서도 말을 아꼈다. 이른바 ‘때릴수록 오른다’는 차기 야권 대선주자로서 윤 총장의 지지율 등의 역풍을 다시 맞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원들 사이에선 윤 총장에 대한 비판이 분출했다.
박범계 의원은 지난 5일 SNS에 “이해가 안 간다”라는 말로 운을 뗐다. 그는 “독재라는 표현은 통합당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라며 “과거 유신 독재, 군사독재 시대에도 공무원들은 독재라는 표현을 언급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상황에 검찰총장이 초임 검사들에게 썼다는 것, 말은 사람의 인격 관심사·인간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검찰의 정치화! 심각”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김두관 의원이 “민주당은 윤 총장 해임안을 제출해야 한다”는 글을 SNS에 올리며 비판 수위의 정점을 찍었다. 지난 6월 “내가 윤석열이라면 벌써 그만뒀다”고 말해 논란이 됐던 설훈 최고위원은 이번엔 “윤 총장은 물러나서 본격적인 정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또다시 사퇴를 요구했다.
◇ “그렇게 만든게 누구”…통합당, 윤석열 엄호
통합당은 윤 총장을 엄호하며 역공에 나섰다.
검사 출신인 김재원 전 의원은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문맥을 그냥 읽어보면 검찰총장이 신임 검사에게 충분히 헌법 정신을 이야기하고, 헌법 정신에 따른 형사소송법과 형법의 집행을 담당하는 검사가 민주주의 정신 아래 검찰권을 행사하라는 이야기”라며 “지금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것을 정치적 발언으로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사실 검찰총장이 정치적 발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고 특수한 상황”이라며 “검찰총장이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해서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지금 그런 발언을 하게 만든 것이 누구이며 또 그런 평범한 검찰총장 발언도 현 정권을 빗대어서 한 발언이라고 느끼게 만든 것이 누구인가를 생각해봐야 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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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미터가 지난 6일 내놓은 주간집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35.6%, 통합당은 34.8%를 기록했다. 리얼미터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일부 반발 심리와 윤희숙 통합당 의원의 본회의 발언, ‘독재·전체주의’를 언급한 윤 총장의 연설과 이에 대한 민주당의 반응 등이 양당에 종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결과”라고 분석했다.
◇ 민주당 신중론 속 “사실상 정치 출사표”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윤석열 때리기’는 윤 총장과 통합당에게 좋은 일만 시켜준 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당내 신중론도 나온다.
홍익표 의원은 7일 YTN라디오 ‘출발 새 아침’에 나와 “윤 총장의 발언은 우리 당이 화를 내야 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통합당이 화를 낼 상황”이라며 논점을 전환하고자 했다.
홍 의원은 “윤 총장의 문맥을 그대로 보면 통합당처럼 사회적 약자 보호를 외면하거나 평등의 가치를 외면한 정치세력에 대해 독재와 전체주의라고 지적한 것”이라며 “다들 윤 총장의 전문을 안 읽어본 것 같다. 일부 언론에서 잘못 보도하면서 대통령에 대한 공격이라고 하니까 우리 당에서도 반응을 했다”고 해석했다. 이어 “검찰총장이라는 지위는 정치적 중립성이나 독립성이 유지되는 자리인데, 이 자리를 자꾸 정치권에서 소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아울러 당내에서 윤 총장의 해임안 건의가 나온 데 대해서도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박용진 의원도 같은 날 “대통령의 인사권 영역에 대해 여당 내부에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가 나오는 건 별로 국민들 보시기에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 또 ‘기-승-전- 조국’?
하지만 김 의원은 다시 “윤 총장의 연설문은 사실상 정계에 진출한다는 출사표였다”며 “추미애 장관은 검사징계법에 따라 징계위원회를 열고 해임 절차를 밟아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 총장은 신고식에서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고 집행돼야 한다’고 했지만 특별한 사람에게만 불공평하게 법을 집행했다”며 “무고한 장관 후보자를 근거도 없이 72회나 압수수색하고 확인되지 않은 가짜 정보를 언론에 흘려 한 가족의 인권을 처참하게 유린한 조국 사건이 대표적”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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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 질(근거 없이 멋대로 한 추측·판단이란 뜻으로, 관심법을 쓴다는 궁예에 빗댄 말)이라고 해도, 만약 윤 총장이 ‘정치권력에 탄압받는 검찰총장’ 이미지에 기대 정치로 뛰어든다고 했을 때 결국 조 전 장관 일가족 수사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정치 컨설팅 및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윈지코리아컨설팅 박시영 대표도 “윤 총장의 정치 행보는 ‘조국 재판’ 결과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연말 또는 내년초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조 전 장관과 아내 정경심 교수의 재판에서 두 사람이 만약 무죄로 나온다면 윤 총장은 무리한 수사를 했고 평지풍파를 일으킨 인물로 낙인 찍혀 중도층의 확장력이 떨어져 정치에 입문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반면 유죄가 나온다면 윤 총장에게 날개를 달아주게 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