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보사' 무죄...과학에 대한 사법 통제에 울린 경종이다

논설 위원I 2024.12.02 05:00:00
법원이 ‘인보사 의혹’ 혐의로 기소된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에게 지난주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 최경서 부장판사는 이 명예회장이 인보사 성분을 고의로 조작한 게 아니라고 봤다. 인보사는 코오롱티슈진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다. 4년 전 성분 착오가 뒤늦게 드러나는 바람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임상 3상을 중단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판매 허가를 취소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인보사는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주목되는 것은 선고문이다. 최 부장판사는 “수년에 걸쳐 막대한 인원이 투입된 이 소송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과학적 분야의 사법적 통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부장판사는 인보사를 다루는 미국과 한국의 태도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과학을 과학으로 다뤘다. 실제 FDA는 2019년 5월 임상 중단 결정을 내렸으나 안전성을 점검한 뒤 2020년 4월 임상 재개를 허용했다. 인보사는 올 7월 미국인 환자들을 상대로 3상 투약을 완료했고, 오는 2027년 FDA에 품목허가를 신청하는 게 목표다.

반면 한국은 식약처가 2019년 7월 인보사 허가를 취소한 데 이어 1년 뒤 검찰이 이 명예회장 등을 약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식약처 결정을 두고는 별도로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재판부의 지적대로 한국은 과학을 과학으로 다루지 않으려는 풍조가 팽배하다. 넓게 보면 ‘뇌송송 구멍탁’ 광우병 파동, ‘몸이 튀겨진다’는 사드 전자파 소동, ‘방사능 범벅’ 일본 수산물 괴담이 같은 범주에 든다. 특히 정치권은 과학을 비과학적으로 재단한 뒤 아니면 말고 식이다.

신약은 인고의 산물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든다. 성공 확률도 낮다. 한국은 이 시장에 이제 겨우 발을 들여놓았을 뿐이다. 한국이 메이저 제약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시행착오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법원은 인보사 성분 착각을 안전성과 무관한 시행착오라고 인정했다. 최 부장판사는 과학에 대한 사법 통제라는 화두를 던졌다. 우리 모두가 깊이 고민할 대목이다. 인보사 1심 판결은 근래에 보기 드문 명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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