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씨는 두 다리를 운전대 위로 올리고 안전벨트까지 맨 채, 마치 휴식을 취하는 것 같은 자세로 숨져 있었다. 기어는 D에 놓여 있었고, 운전석의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외상은 전혀 없었고 차체도 손상이 없었다.
부검 결과 이 씨의 사인은 익사가 아닌 급성약물중독이었다. 이 씨의 체내에서 치사량에 가까운 수면제성 약물이 민들레 즙과 함께 검출됐다. 이 씨에게 자살 동기가 특별히 없던 점까지 더해 경찰은 이 씨가 살해됐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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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스러운 일은 또 있었다. 이 씨가 사망하기 2년 전 있었던 의문의 교통사고다. 2004년 5월, 용달차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이 씨를 뒤에서 들이받아 이 씨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당시 이 씨의 동생은 김 씨가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합의를 해줬다는 것과 사고 몇 개월 전부터 집중적으로 가입한 교통사고 보험 등을 이유로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 씨의 아내는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이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며 사건은 미제로 남는 듯 했다.
그리고 2012년 6월. 새로운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사건을 재수사하던 경찰의 보험범죄전담수사팀이 2004년에 발생한 이 씨의 오토바이 사고가 아내인 김 씨의 청부에 따른 살인 시도였다고 밝힌 것.
김 씨가 당시 자신과 내연 관계였던 정 씨(57세)에게 1억을 주기로 약속하고 교통사고로 위장해 남편을 죽여 달라 사주했다는 것이다. 정 씨는 다시 자신의 지인인 문 씨에게 8000만원을 주고 고의 교통사고를 의뢰했지만, 사고 직후 문 씨가 심경 변화를 일으켜 이 씨를 응급실로 이송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정 씨는 2006년 저수지 사건 역시 김 씨가 남편에게 약물이 섞인 민들레 즙을 먹여 의식을 잃게 한 후 차량 채 저수지로 밀어 넣었고 이 과정을 자신이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 보험금을 노린 아내의 치밀한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확인 결과, 이 씨 명의로 된 보험은 총 16개. 수익자는 모두 김 씨였다. 게다가 일부 보험은 다른 사망 사고에는 보장되지 않고 교통사고일 경우에만 거액이 보장되는 특약이 설정돼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살인·살인미수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씨에게 교통사고를 위장한 살인미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하고, 독극물 살해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 판단했다. 공범 정 씨와 문 씨에겐 각각 징역 4년과 5년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무죄 판단과 관련 “김 씨가 2004년 한 차례 남편을 살해하려 했고 이후에도 남편 앞으로 9개 보험에 가입하거나 가입하려 한 사실 등은 인정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김 씨가 다량의 독극물을 샀다고 볼 증거가 없고 김 씨의 남편이 언제·어디에서 숨졌는지, 해당 독극물 치사량을 먹었을 때 어느 정도 후에 사람이 사망할 수 있는지 등이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았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김 씨가 남편에게 독극물을 마시게 해 살해했다는 사실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1·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2013년 9월 상고를 기각해 김 씨의 살인 혐의 무죄를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