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조정장에서도 국내 ETF는 어느덧 600개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올해 출시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섹터, 테마 등 ETF가 이미 포화되면서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평이다. 자산운용사들은 상대적으로 장벽이 높은 국내 제도권 안에서 ‘기존에 없던’ ETF를 위한 아이디어 싸움을 치열하게 벌이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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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상장종목수는 595개다. 오는 29일 상장되는 3개 종목을 포함한 규모로, 1~7월 상장 수는 62개다. 이날 기준 올해 유형별 상장 수를 살펴보면 △주식-업종섹터와 업종·전략 테마 29개 △주식-시장대표 14개 △주식·채권 혼합자산 11개 △채권 4개 △부동산-리츠 2개 등이다.
코로나19 이후 국내에서 직접 투자가 크게 활성화되면서 ETF 산업도 급성장했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운용사들의 상품 출시도 가속화됐다. 특히 유동성이 풍부했던 지난해 대형 성장주 등 기술주 중심 투자가 이뤄지면서 테마형 등으로 자금이 몰렸고, ETF 시장 성장을 견인했다는 평이다. 미국 대표 지수부터 중국 전기차 등 테마형까지 투자자 손길을 이끌었다.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된 ETF 90개 중 테마형은 58개를 차지했다.
고속성장해오던 ETF는 조정장을 맞은 가운데 성숙기에 접어들었단 평이다. 운용사들은 “ETF를 먹거리로 보지만, 지수·섹터형 등 이제 나올 만큼 다 나왔다”며 “하락장에서 차별화를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지만, 아직 나오지 않은 인덱스 ETF를 찾기도 하늘에 별 따기”라고 입을 모았다.
이는 해외도 마찬가지다. 주식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는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채권이 활용돼 왔지만, 주식·채권 변동성이 모두 커지면서 인컴형 ETF 등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상반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20%대 하락한 반면, 같은 기간 미국에 상장된 ‘JP모건 에쿼티 프리미엄 인컴 ETF’(JEPI)는 상반기 -12.3%로 낙폭이 제한된 것으로 나타났다. JEPI는 우량주 투자와 옵션 전략을 활용해 배당·이자 수익으로 월간 분배금을 지급한다.
국내 운용사도 올 하반기 신규 출시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읽힌다. 커버드콜 전략을 따르는 동종 ETF는 ‘QYLD’(티커), ‘XYLD’, ‘JEPQ’ 등이 꼽힌다. 김진영 키움증권 글로벌 ETF 담당 연구원은 “인컴형 ETF는 변동성이 높고 증시가 횡보할 때 벤치마크를 아웃퍼폼할 확률이 높다”며 “증시가 박스권 내 변동성을 이어갈 시 투자가 유효한 상품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 해외선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도…“국내는 제도벽서 아이디어 싸움”
해외에서도 ETF 산업이 성숙되면서 운용사들이 차별화를 위한 새로운 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특히 올해 높은 시장 변동성에서 단일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옵션 전략을 결합한 ETF들도 등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내에선 제도상으로 단일 종목으로 ETF가 구성될 수 없다.
지난 14일(현지시간) AXS인베스트먼트는 단일 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F 8종(티커 TSLQ, NVDS, PYPT, PYPS, NKEL, NKEQ 등)을 선보였다. 각각 테슬라와 엔비디아, 페이팔, 나이키 등 업종별 대표 종목의 일간 등락률을 -2~2배 사이에서 추종한다. 디렉시온, 커브 인베스트먼트 등 운용사들도 유사 상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알파벳, 아마존, AMD, 애플, 메타플랫폼스와 같은 종목들이 투자대상 목록이다.
김 연구원은 “통상 전문투자자들만 접근 가능했던 공매도 전략을 ETF를 통해 개인투자자들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높은 리스크에도 전략 다양성 차원에서 관심을 모았다”며 “다만 금융당국의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시장 환경과 규제 요건 등으로 적용이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일 종목 대응인 만큼 ETF의 기본적인 특성인 포트폴리오 분산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레버리지형으로 구성돼 있어 큰 변동성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인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도 미국의 개방적 흐름을 따라가고 있지만 시장 환경과 규제 요건에 차이가 있다”며 “다만 한국거래소가 상장지수상품(ETP) 시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운용사들도 파생 상품을 제도권 안에서 새로운 파생 ETF 찾기 위해 별도 조직까지 만들어 준비하고 있다. 국내 운용사 한 관계자는 “지난해까진 테마형 수요가 높았지만, 올해엔 좋은 상품을 내놔도 예전만 못하다”며 “과거 2018년에도 금리 인상기 변동성 국면에 유사한 흐름을 보였고, 올해 운용사별로 구조화 조직 등을 만들어 파생 상품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