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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소법 탓에”…펀드 퇴짜 놓는 판매사, 우는 운용사

김윤지 기자I 2021.04.26 00:35:00

판매사, 규제 고충 운용사에 전가
돌연 ‘판매 불가’에 모집 취소까지
“공모 위축 우려, 제도 보완 등 필요”

[이데일리 김윤지 기자] 30대 직장인 A씨는 평소 관심있던 분야에 투자하는 신규 펀드가 출시된다는 소식에 바로 금융 앱을 열었다. 수익률이 꽤 나왔던 기존 펀드를 일부 환매 신청했다. 며칠 후 환매금으로 해당 펀드에 온라인 가입하고자 했지만, 모집이 마감됐는지 상품을 찾을 수 없었다. 추가 가입 일정은 없는지 궁금했던 최씨는 판매사를 찾아갔지만, “취소됐다”는 답변만 받았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첫 날인 지난 3월 25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붙은 안내문(사진=연합뉴스)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금소법)에 이어 ‘고난도금융상품’을 새로 정의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시행까지, 간접 투자 상품에 대한 규제 강화가 연달아 진행되면서 현장에서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모집을 진행하던 공모 펀드가 판매사의 갑작스러운 ‘판매 불가’를 이유로 돌연 모집을 취소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판매사가 금소법을 핑계 삼아 상품 판매 과정에서의 번거로움을 사실상 운용사에 떠넘긴 것이다.

◇ 갑자기 모집 취소 이유는…‘금소법’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운용사는 신규 공모펀드를 출시하고 고객 모집에 나섰다가 하루 만에 이를 중단했다. 상품 개발 단계서부터 해당 펀드에 대한 관심을 보여줬던 주요 판매사가 모집 첫날 갑자기 “팔 수 없다”고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직접 펀드를 안내해야 하는 WM(자산관리) 등 현업에서 해당 펀드가 폐쇄형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부터 시행된 금소법과 내달 10일 시행 예정인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 규제 강화의 핵심은 판매사의 책임 강조다. 금소법에 따르면 금융사의 잘못 시 최대 5년까지 불이익 없이 해지가 가능하고, 설명의무 위반 시 입증 책임을 금융회사가 하도록 했다. 처벌 조항 또한 강력해 업계는 이를 악용하는 블랙컨슈머를 우려하고 있다.

해당 펀드는 변동성이 큰 기초자산에 투자하는데, 정해진 시기까지 자금을 뺄 수 없는 폐쇄형으로 설계됐다. 기초자산의 특성을 고려한 구조이나, 판매사 측에선 투자 기간 동안 수익률이 악화됐을 때 투자자와의 분쟁을 야기할 수 있는 요소라고 뒤늦게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 같은 혼선에 따른 피해는 운용사 뿐만 아니라 개인 투자자도 떠안아야 했다. 운용사가 끝내 모집 취소를 결정하고 전 판매사에 통보하기까지 하루 이상 시간이 소요됐다. 실제 펀드가 설정되진 않았으나, 그 사이 일부 판매사는 고객의 자금을 받았고 갑작스러운 모집 취소에 자금을 다시 돌려줘야 했다. 펀드 가입까지 수많은 서류를 작성하고, 대면인 경우 현장에서 녹취가 이뤄지는 등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헛수고를 한 셈이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책임 강화에…“직접 투자 선호 강화될 것”

간접 투자 상품 판매 규제 강화를 계기로 판매사의 노골적인 요구가 늘어났다는 것이 운용사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상품에 대한 자료 준비부터 시작해 까다로운 투자자 응대까지 운용사에 언급하는 판매사도 있다”면서 “구조가 다소 복잡하거나 투자 자산의 변동성이 크다는 이유로 판매사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출시가 임박했음에도 진행이 중단되거나 전면 수정에 돌입한 상품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운용사에 있어 판매사는 통상 ‘갑’으로 통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월 말 현재 공모펀드의 판매 기관별 판매잔고를 살펴보면 증권이 59.08%, 은행이 35.97%, 보험이 1.70%, 직판 등의 기타가 3.24% 수준이다. 지난해 이후 직접 판매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 판매사 비중이 압도적이다. 때문에 운용사로서는 판매사가 특정 펀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른바 ‘추천 상품으로 걸어주는 일’에 큰 의미를 둘 수밖에 없다.

업계는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을 겪으면서 가뜩이나 정체된 공모 펀드가 규제 강화로 고사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16년 말 94조4204억원이었던 개인 투자자의 공모 펀드 판매 잔고는 지난해 말 82조9672억원으로 5년새 10조원 넘게 빠져나갔다. 내부통제 기능 강화, 적합성 원칙 등 6대 행위 규준 준수를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쏟아야 하는 판매사는 펀드와 같은 금융상품 보다는 저원가성 예금이나 대출 금리 인상 등의 수익성 중심 전략을 취할 수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각종 규제들이 지닌 소비자의 권익 강화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저마다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 범위가 다름에도 지금 분위기에선 안전한 상품만 권하게 된다”면서 “결과적으로 판매사 입맛에 맞춰 금융 상품이 양산돼 금융 소비자의 선택지가 제한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돼, 직접 판매 등 운용사 차원의 자구책 마련도 필요하지만 제도 보완도 이뤄져야 할 부문”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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