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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2017년 정유(丁酉)년 ‘붉은 닭’의 해가 밝았다. 역사 속 정유년은 커다란 전환점이 된 순간이 많았다. 1597년 충무공 이순신은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라며 명량해협에 뛰어들어 일본을 물리쳤다. 1897년엔 아관파천을 끝낸 고종이 외세를 향한 자주독립 주장과 함께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소련은 1957년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와 개 ‘라이카’를 실은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하며 우주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정유재란 전세 바꾼 ‘명량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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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전라남도 해남과 진도 사이에 있는 울돌목(명량해협)에서 일본과 맞설 준비를 했다. 그때 그에게 있던 배는 겨우 13척. 이에 선조는 수군을 폐지하려고도 했으나 이순신은 다음과 같은 말로 승리를 자신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나이다. 죽을힘을 다하며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사옵니다.”
일본군은 130여척의 군선과 200여척의 수송선을 내세워 조선을 압박했다. 물량만 놓고 보면 패배가 분명한 전투였다. 그러나 험난한 조류를 이용한 이순신의 전술과 병사의 활약, 더 많은 배가 있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편 백성의 힘으로 조선의 기적 같은 승리를 이뤄냈다.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승리는 정유재란의 전세까지 단번에 뒤집었다.
△아픔과 시련의 역사 ‘대한제국’
19세기 말 무섭게 몰아치는 근대화와 제국주의의 파도 앞에서 조선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신세였다.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는 외세 앞에 큰 두려움을 느꼈다. 외세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국가를 바랐다. 그런 바람 때문이었을까. 을미사변 이후 러시아공관에 피신해 있던 고종은 1897년 경운궁으로 환궁했다. 8월 17일부터 ‘광무’를 연호로 쓰기 시작했고 10월 3일엔 황제 칭호 건의를 수락했다. 이어 10월 12일 원구단에서 천제를 올리고 국호를 고친 뒤 황제로 즉위했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것이다.
이후 고종은 근대화 국가가 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광무개혁을 단행했다. 과거 청과의 사대관계를 상징하던 영은문을 허물고 독립문을 세운 것도 이때의 일이다. 그럼에도 외세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한 대한제국은 결국 1910년 한일병합 조약으로 막을 내린다. 아픔과 시련의 역사다. 그러나 그런 역사를 이겨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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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동반자 ‘스푸트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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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작을 알린 것이 바로 1957년에 있었던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발사다. 소련은 로켓기술자인 세르게이 코롤료프의 제안을 받아 인공위성 발사 계획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 ‘스푸트니크’란 ‘여행의 동반자’란 뜻을 지닌 러시아어. 1957년 10월 4일 마침내 우주로 발사한 스푸트니크 1호는 이듬해 1월 4일까지 지구를 돌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으로 기록됐다.
이어 11월 3일엔 ‘라이카’란 이름의 개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해 유인 우주선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에 미국도 같은 해 12월 6일 뱅가드 로켓 발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실패로 끝나면서 자존심을 구겼다. 이때부터 시작한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은 이후 아폴로계획과 소유즈계획으로까지 이어지는 우주개발의 발판을 마련했다.
△태조 왕건·권율 탄생…장승업 등 사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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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엔 인물이 특히 많이 나왔다. 제4대 대통령 윤보선과 가수 윤심덕, 소설가 염상섭, 한국화가 이상범이 그 주인공이다. 미국 여성비행사로 대서양과 북아메리카를 횡단했던 아멜리아 에어하트도 1897년 7월 24일에 태어났다.
정유년에 세상을 떠난 이들 중엔 유독 예술인이 많다. 화가 장승업은 1897년 54세의 나이에 죽음을 맞았다. 러시아 근대문학의 창시자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아내 때문에 일어난 프랑스 귀족과의 결투에서 패해 37세 나이에 비운의 죽음을 맞았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독일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 ‘별’ ‘마지막 수업’을 쓴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 도데도 같은 해 운명을 달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