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간극은 한일 관계를 교착시킨 강제동원 배상에 대해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과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이 충돌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강제집행을 개시하고 한국 내 자산에 대한 현금화를 추진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일본 입장에서 보면 이는 최고재판소 판결을 거스르는 행위다. 일본 정부가 현금화가 이뤄진다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천명하는 이유다.
결국 이는 외교적인 합의 외에는 해답이 요원할 문제일지 모른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근거로 일본과 과거사 전쟁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북·중·러 밀착에 맞선 한·미·일 동맹을 감안해 정치적인 타결을 할 것인가. 해법은 둘 중 어디에 가까울지에 대한 문제일 뿐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변수는 미국이다.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두 나라 사정만으로 문제를 풀 수 없다. 말 그대로 고차방정식이다. 이런 복잡한 현실 속에서 윤 대통령은 오는 1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연다.
“일본을 향한 한국 국민들의 반감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불행한 것은 일본 국민들도 한국에게 무엇을 하든 충분하지 않다는 ‘한국 피로감’(korea fatigue)이 있다는 점이다. (세계가 분열하는) 이 위험한 시대에 한일 두 나라가 과거를 중시한 채 미래를 경시할 여유는 없다고 본다.”
미국 유력 싱크탱크인 스팀슨센터의 로버트 매닝 선임연구위원은 한일 정상회담을 앞둔 13일(현지시간) 이데일리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는 30년 가까이 미국 정부 안팎에서 외교정책에 관여한 최고의 아시아 전문가로 손꼽힌다.
|
◇“강제징용 해법, 尹 대담하게 주도”
-한국의 강제징용 해법을 어떻게 보나.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과거 법적·정치적 전례를 잇는 전략적인 조치라고 본다. 미국 작가인 윌리엄 포크너는 남북전쟁을 놓고 ‘과거는 죽지 않았고, 심지어 아직 지나가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과거사에 대한) 원성은 지속할 것 같다. 일본도 한국에 대한 피로감이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현재 (지정학적으로) 시점은 역사적으로 볼 때 너무 위험하다.
-어떤 위험인가.
△우리는 푸틴에게 무기를 공급하는 북한과 이란이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있다. 또 쿼드(QUAD, 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 참여 비공식 안보회의체)와 협력하는 한국을 향해 중국이 경고하는 것을 보고 있다. 거대한 파워게임이 세계 질서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한일 관계에 대해 미국은 어떻게 보나.
△미국은 오바마 정부부터 바이든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일본 모두 과거사를 해결하고 미래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두 나라 모두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를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맡기로 한) 이번 발표는 미국이 주도한 게 아니라 윤 대통령이 과거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대담한 행보(bold move)를 한 것으로 평가한다. 현재 경제 안보 과제는 한미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해서다. 기시다 총리가 일본 기업들과 협력해 한일 관계개선을 위해 만들기로 한 ‘미래청년기금’에 적극적으로 출연하게 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미국 내 다수는 한일간 화해를 위태롭게 하는 한국 내 반발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어떤 합의를 기대하나.
△한일 양국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과거사 문제를 충분히 다루는 동시에 동북아 미래를 위한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한국을 대상으로 한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를 해제하는 등) 무역, 투자, 기술 등에서 더 강하게 협력해야 한다. 특히 공급망 문제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또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지속적인 고위급 대화(on-going senior-level dialogues)를 포함해야 한다. 아울러 이같은 분야에서 미국과 3자 협력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번 회담 때 쿼드 확대 논의는 이뤄질까.
△우선순위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은 (현재 4개국 외에) 더 많은 나라들에 쿼드를 개방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쿼드 확대는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처럼 인식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韓, 미중 사이 균형 점점 어려워져”
-윤 대통령이 다음달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은 상징적으로 보나 실질적으로 보나 매우 중요하다. 안보 협력과 관련해 양국 파트너십을 어떻게 더 강화할지가 최우선 과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노력에 대한 한국의 지원 역시 주요 의제다.
-한국이 미국 산업정책으로 역차별을 받고 있는데.
△그렇다. 미국 내에서 핵심 물품을 생산할 때 혜택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등이다. 한국과 유럽연합(EU), 일본은 모두 미국의 경제 내셔널리즘(US economic nationalism)의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은 (혜택보다 역차별이 많다는) 한국의 우려를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한국은 미·중 갈등이 걱정되는 측면이 있다.
△동아시아 지역의 많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다. 이미 사드 사태 때 경제적인 탄압을 경험했다. 북중러 유대가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한국에 어려운 문제를 주고 있다. 그러나 한미 동맹 관계와 중국 바로 옆에 사는 것 사이의 올바른 균형점을 찾는 것은 어려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균형점을 찾으려고 할 때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글로벌 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간 대립 등) 많은 작업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중국과 갈등을 피하려고 하면 점점 더 문제가 될 것이다.
◇로버트 매닝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역사학 학사 △미국 외교협의회(CFR) 연구원 △미국 국무부 장관기획참모 △미국 국가정보위원회 글로벌 사무국장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실 선임전략가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위원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위원 △‘아시아인의 에너지 인자’(The Asian Energy Factor) 등 주요 저서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