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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은 우리나라 국민총소득(GNI)이 주춤했던 시기였다. 1960년대 이후 고속성장을 거듭하며 1977년 1000달러를 돌파했고 1994년 1만 달러, 12년 만인 2006년에 2만 795달러로 들어섰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2009년 1만 8256달러로 줄었다. 조금 더 허리띠를 조이고 달음박질을 하면서 4만 달러도 문제없다는 이른바 ‘747’의 대선공약도 이어 등장했다.
‘문화’와 ‘산업’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문화(Culture)는 서구식 어원 ‘경작’을 뜻하는 데서 출발해 한 사회의 생활방식을 포괄하는 등 변화를 거듭했다. ‘산업’(Industry)은 인간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상적으로 종사하는 생산적 활동을 일컫는다. 정신적 가치를 강조한 문화와 물질적 수단을 추구하는 산업이 가끔 충돌하는 이유다. 문화예술단체의 장이 임명될 때 즈음 단체의 운영을 기업 경영과 비교해 투입-과정-산출을 따지는 경제적 효율성을 따지는 게 관심을 받는 배경이다.
지난 8일 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에 지명됐다. 문체부 차관의 관료 출신으로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박양우 교수(이하 지명자)가 지명된 것을 놓고 기대 반 우려 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기대는 자주 시를 읽었고, 주로 블랙리스트 해결에 몰두했던 도종환 현 장관의 아쉬움을 지울 거라는 거다. 반면 우려는 그래도 ‘문화’에 천착했던 도 장관에 비해 박 지명자가 ‘산업’에만 몰두하지 않을까 염려한 때문이다. 우려는 박 지명가가 한국영화배급협회장, 한국영화산업전략 센터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대기업의 이해를 대변했다는 의심에서 출발한다. 박 지명자는 앞서 2014년 3월1일부터 2021년 7월1일까지 임기로 CJ ENM의 사외이사 및 감사를 맡은 바 있다.
일부 영화계에서는 투자-제작-배급-상영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 등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박 지명자가 대기업의 편에 서는 게 아닌가 염려한다. 실제로 한 편의 블록버스터가 스크린을 싹쓸이하는 통에 관객이 보고 싶거나 봐야 할 다양성 영화가 사라진다는 아쉬움이 현존한다. 와이드릴리즈로 개봉 초기 투자금액을 회수하는 할리우드식 시스템이 한국 영화의 양적 성장을 가능케 한다는 논리도 일견 설득력이 있다. 결국 수직계열화는 영화 ‘문화’의 다양성이 우선이냐, 영화 ‘산업’이 우선이냐 등 가치 판단과 얽힌 문제다.
박 지명자가 차기 문체부 장관에 이름을 올린 8일, 2018년 1인당 국민총소득 3만 달러를 돌파했다는 뉴스가 함께 등장했다. 2006년 2만 달러를 돌파한 이후 12년 만에 3만 달러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 3만 달러는 선진국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뉴스가 전해진 후 실제 체감과 다르다는 국민의 반응은 문화적 선진국과 경제적 선진국의 심리적 괴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바라건대 3만 달러 시대에는 문화가 가진 ‘무형의 힘’을 높이 평가하는 게 어떤가. 문화를 산업으로 바라보던 2만 달러 시대의 시각을 벗어내야 진정한 선진국이 아닐까.
방탄소년단의 멤버 RM이 제6회 이데일리문화대상에서 인용한, ‘오직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백범 김구의 말씀이 매출 몇조, 관련 상품 몇조를 뜻하는 게 아니다. 백범 김구는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3만 달러 시대의 문체부 장관이 문화 ‘산업’의 강국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데 힘써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