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초기 투자사 관계자들에게 ‘요새는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하냐’는 질문을 하면 돌아오는 공통적인 대답이다. 신박한 아이디어에 투자하는 시대가 저물고 기술 기반의 딥테크 사업에 투자하는 시대가 도래한 만큼, 투자사들 사이에서 ‘산업화되지 못한 기술을 찾아 연구실로 가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특히 벤처투자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런웨이(Runway·스타트업이 추가 투자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간)’를 걱정하는 스타트업이 늘어나는 가운데 연구진 중심의 창업 기업의 장기 생존율이 여타 스타트업 대비 높다는 점 또한 매력 포인트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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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표적인 곳은 지난해 말 VC라이선스를 획득한 퓨처플레이다. 대전 카이스트 주변에 사무실을 마련한 퓨처플레이는 최근들어 연구실 창업 스타트업에 잇따라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예컨대 퓨처플레이가 지난달 투자한 치매 전용 디지털 엑스선 치료 시스템 개발사 ‘레디큐어’는 강동경희대학교병원 방사선 종양학 전문의와 뇌과학 연구자, 의료기기 전문가들로 꾸려진 연구실 창업 스타트업이고, 지난 3월 투자한 피부 미용·의료 솔루션 제공 스타트업 ‘미메틱스’ 역시 성균관대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연구실에서 비롯된 곳이다.
대학교 창업 동아리와 연을 맺고 초기 투자 기회를 잡는 투자사도 있다. 국내 디지털헬스케어 전문 투자사인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DHP)’도 서울대학교 헬스케어 창업 동아리에 수년째 후원하며 연을 이어가고 있다. DHP는 동아리 창업팀이 창업 아이디어를 발표하면 업계 심사역들과 함께 관련 비즈니스모델(BM)을 심사하고 평가한다. 이를 통해 우승팀을 가려내고, 추후 창업을 하는 팀에는 투자를 집행하기도 한다.
의사 창업자를 위해 관련 부트캠프도 기획 중인 DHP는 대학가뿐 아니라 병원과 관련 연구실로도 발을 넓히고 있다. 최윤섭 DHP 대표는 “창업하려는 의사들이 많은데, 의료 전문가라고 해도 사업의 영역에선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라며 “이를 돕고, 향후 투자 기회를 초기에 잡고자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올해 하반기쯤 의사 출신 창업자 혹은 현직 의사인 창업자들을 모집해 액셀러레이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매쉬업벤처스와 애트리홀딩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씨엔티테크 등도 연구실 창업 스타트업에 속속 투자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초기 투자사들이 카이스트와 서울대 등 국내 유수 대학교 근처에 작게라도 사무실 공간을 내는 이유는 초기 투자처 발굴을 위해서다”라며 “국내 VC들이 초기 투자 영역에 발을 들이는 상황에서 초기 투자사들은 연구실에서 잠든 기술을 산업화할 수 있도록 액셀러레이팅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관련 행보를 펼쳐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