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 사람은 ‘사는 일’을 좇아 여행을 한다. 어느 동네에 이르러 가장 따뜻한 이야기를 듣고 가장 편안한 장면을 포착한다. 다른 한 사람은 검은 먹으로 빛을 만든다. 삐죽한 산과 고요한 강조차 빛이 없으면 의미없다고 한다. 그이에겐 빛이 곧 ‘사는 일’이다. 또다른 한 사람은 하루하루 ‘사는 일’을 상상한다. 산책을 하고 휴가를 떠나고 사유하는 일까지 상상의 세계에서 꾸려낸다.
여기 ‘사는 일’ 자체가 풍경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이 펼친 ‘2018 예감전’에 나선 3명의 작가다. 해마다 ‘예감 좋은’ 젊은 작가를 선정해 오늘의 작업을 내보이고 내일의 성장을 가늠하는 자리다. 2004년부터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다르다. 굳이 작가의 나이를 꼽지 않고 깊이만 내려다봤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관행을 털면서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올해의 작가는 설종보(53), 홍푸르메(52), 김민주(36)다. ‘재해석된 풍경’이란 테마 아래 나란히 세웠다.
|
이들의 ‘풍경’을 위해 화랑 전관을 할애했다. 한 층씩 한 작가의 개인전처럼 꾸며 45점을 내놨다. 시선과 방식, 개성과 생각이 완전히 다른 그들만의 3인3색에 계단을 놓은 셈이다.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다. ‘산다고 그리고, 풍경이라 읽는다’는 것. 세상 어디에도 없으나 세상 어디라도 닿을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사는 일’ 하나로.
△차마 떠날 수 없는 정겨운 풍경…설종보
어두운 밤을 비추는 보름달. 가족은 귀가 중이거나 밤마실에 나섰다. 계절마다 다른 꽃이 동네 색을 바꾸고 눈이 내려도 삭막하지 않다. 벗은 몸을 드러낸 나무까지 정겨우니까.
작가 설중보의 그림은 따뜻하다. 보름달·가족·꽃·동네·눈·나무 등을 키워드 삼아 푸근한 정경을 뽑아낸다. 이 장면을 찾아 그는 떠난다. 고향인 부산의 구석구석은 물론이고 강릉·인제·제주 등을 오간다. ‘사진으로 담은 어딘가’ 싶지만 이 중 절반은 이미 없다. ‘범일동: 교통부구름다리’(2015)의 구름다리나 하천변 상가는 벌써 사라진 명물이고, ‘겨울 안창마을’(2015)의 섬처럼 보이는 동네는 부산의 산복도로 형식을 극대화한 형태다. ‘서산 간월암: 달밤바다’(2016)는 봄밤의 간월암을 유토피아처럼 만들었다.
|
한때는 도시노동자·소시민의 척박한 현실을 그렸단다. 그러던 작가가 어느 순간 달라졌다. “불편한 현실을 직접 표현하기보다 희망으로 바꿔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함을 거둬내고 온기 품은 색감으로 가족을 담아내려고 했다.”
설 작가의 풍경은 사실적이지만 사실적이지 않다. 원근파괴, 구도파괴가 크다. 한국화인 양 큰 배경에 작게 박은 인물도 그렇거니와 가족이 다 모인 집은 터질 듯 좁고 꽃더미에 묻힌 나무는 곧 쓰러질 듯하다. 게다가 그의 인물은 하나같이 미소를 띠고 있다. 그 앞에서 작가는 “달이 해보다, 밤이 낮보다 편안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맞다. 달과 밤은 휴식이니까. 결국 이런 말을 하고 싶었나. ‘세상은 바뀌어도 사람은 산다, 달은 뜨고 꽃은 피고.’ 그것이 기억이든 희망이든.
|
△일필휘지가 띄운 장엄한 풍경…홍푸르메
화선지를 내리누른 건 몇줄의 굵은 붓선. 그런데도 눈앞에 산이 섰다. 숲이 보인다. 강물이 찰랑이고 물풀이 흔들린다. 이내 바람까지 잡아내더니 흐르는 구름을 멈춰 세운다.
작가 홍푸르메는 먹 작업을 한다. 오로지 먹의 농담만으로 광활한 세상을 빚어낸다. 그저 ‘수묵화’로 단정하기엔 좀 섭섭하다. 묘사가 아니라 성찰이니까. ‘여백과 절제’로 가두기도 편치 않다. 그이의 붓이 비켜간 부분은 여백이 아니고 빛이니까. 표현을 아낀 절제가 아니라 이미 다 쏟아부은 거니까.
|
홍 작가에게 잔챙이 붓질은 없다. 거대한 종이에 거대한 붓으로 거대한 풍경을 만든다. ‘일필휘지’란 수식이 붙는 이유다. 일필휘지는 자신감이다. 숨 한 번 고르고 단번에 내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 그이의 고집스러운 작업은 종이와 붓을 까다롭게 고르는 일부터 시작한다. 붓과 화선지, 배접지까지 ‘우리 것으로 특별제작’해 조달한단다. 궁합을 맞추느라 손에 닿는 종이와 붓은 모두 다 써봤다고 해도 될 정도다. “조형이나 형태에 어떻게 가깝게 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지만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을지 모른다. 작가에게 조형은 빛이고 형태는 면, 다시 말해 작품의 전부니까.
|
그러다 보니 ‘인기 없는 동양화’를 위한 돌파구가 보이더란다. “역지사지가 떠오르더라. 내가 컬렉터라면 이런 그림을 사고 싶겠나 하는.” 전통을 품되 먹향과 먹빛이 도드라지는 방법을 고안했다. 수고가 헛되지 않았는지 그이는 이제 유럽과 미국·러시아 등에서 ‘예의주시’하는 작가다.
전시에는 연작 ‘일기일회’(At This Momemt·2017)와 ‘500마일’(2016) 등을 내놨다. 간혹 남성작가의 작품으로 오해를 받는다며 웃는다. 굳이 성별을 따지자는 게 아닐 거다. 흔들리지 않는 ‘선 굵은’의 다른 말일 테니.
|
△발칙한 상상이 만든 위트있는 풍경…김민주
참 발칙한 상상력이 아닌가. ‘게으른 산책’(2014)이란다. 훌훌 옷을 벗어던진 이가 숲으로 들어가 숲으로 나오는 소풍을 감행한다. 나무숲 틈으로 삐죽이 손을 내 책장을 넘기고 과일을 따고, 발끝으로 물을 튕긴다. 먹과 여린 채색으로 작업한 가로 435㎝ 대작. 사계절 신선놀음 같기도 하고 맨몸으로 와서 맨몸으로 떠나는 인생으로도 보인다.
작가 김민주 역시 즐기는 소재가 있다. 작은 배, 삿갓 쓴 나체의 인물, 나무·물·그물, 여기에 최근 등장시킨 책상·책꽂이 등. 이들을 엮어 조화로운 풍경을 꾸려내는 거다. 하나하나는 친숙하지만 ‘정상’은 아니다. 고기잡이 그물은 한쪽이 터져 있고(‘빈 배 가득 밝은 달만’·2014), 산 중턱에 꽂힌 배(‘사유의 섬’·2017), 세상에선 볼 수 없는 정체불명의 나무(‘사유의 숲’·2017) 등. 평범한 연립주택은 쉬는 집(휴가·休家)이 됐다(‘휴가’·2012). 3층에서 시작한 폭포가 2층을 거쳐 1층까지 이어지는.
|
김 작가의 장기는 편안함이다. 노동집약적인 세세한 묘사, 압도적인 규모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지 않는다. 김 작가는 “누구라도 어디쯤에 들어갈 수 있는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다. 그렇게 산책도 시키고 배도 태우고 휴가도 보냈다는 얘기다.
위트와 섬세함을 첩첩이 쌓은 그림을 그리며 김 작가는 일탈을 꿈꾸기도 했나 보다. “배야 이동하는 수단이지만 잠시 머물기도 하고 흘러가기도 하고. 그물을 터놨으니 잡힌 물고기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전시는 3월 10일까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