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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행정공제회는 벨기에 브뤼셀과 독일 함부르크,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에 단독 투자해 소유하고 있는 실물자산을 점검하기 위해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근래 들어 미국을 비롯해 해외 상업용 부동산(CRE) 시장을 둘러싼 위기가 확산하면서 시장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사전 방문한 것이다.
5~6년 전부터 국내 기관투자가의 자금이 미국과 유럽 오피스를 편입한 해외부동산 펀드에 쏠리기 시작했다. 특히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런던, 파리 소재 빌딩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도입되면서 미국과 유럽 중심지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이 치솟으며 자산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엔데믹에 접어들었지만, 서서히 오르던 공실률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코로나19 때 재택 근무가 활성화하면서 미국 핵심 지역 오피스 공실률이 약 30%에 달하며 거래 자체가 죽었다”며 “요즘 국내 기관들이 그런 조짐을 감지하고 실물자산을 점검하기 위해 해외 출장을 가서 분위기를 살피는 모양”이라고 전했다.
행정공제회도 삼성SRA자산운용 등과 공동 투자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피스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을 검토 중이다. 시장 상황이 안 좋은 만큼 손실을 보며 자산을 매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브뤼셀 소재 ‘브레데로더’ 빌딩은 세계 5대 로펌 중 하나인 링크레이터스(Linklaters) 등이 장기 임차하고 있어 여전히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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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큰손으로 꼽히는 연기금과 공제회 관계자들은 미국과 유럽에 있는 실물자산에 대한 부실 우려가 커지자 밤잠을 설친다고 입을 모은다. 통상 5~6년 안팎의 펀드 약정 기한이 지나면서 올해 줄줄이 만기가 돌아오는 자산들이 많아 투자자들이 한데 모여 수차례 회의를 하는 것도 일상이라고 한다. 공제회뿐만 아니라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KIC)도 해외 굴지의 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들을 만나 투자자산을 둘러보며 시장 상황을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리파이낸싱(재융자)을 해줄 은행들이 줄어들면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한때 과열된 투자 열기로 몸집이 급격하게 불어난 해외 대체투자 시장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엑시트(투자금 회수) 리스크’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기존 대출의 만기가 돌아와도 돈을 빌릴 은행이 없으면 디폴트 가능성이 커진다”며 “옛날에 저금리로 담보대출 받은 게 만기가 돌아와 대출 연장이 불가하면 그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실물자산 중심의 대체투자 시장에 긴장감이 감돌면서 대부분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유동성 리스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지금 큰손들의 해외 출장지가 곧 디폴트 우려가 생긴 자산이 있는 곳이라 잘 살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다른 공제회 관계자는 “증권사들 셀다운 자산이 문제가 많다고 들었고, 아마 자산이 팔리지 않아 펀드 만기 연장 사례가 늘 것”이라며 “요즘 자산 관리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기관들이 해외 출장을 간다고 하면 물린 자산 살피러 갈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