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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는 ‘무리를 뽑아서 그들에게 효제와 충신을 가르쳐 나라를 다스리는 데 대요를 삼는다’고 적혀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처음에 군신이 인재를 알지 못함을 유감으로 여기어 사람들을 끼리끼리 모으고 떼 지어 놀게 해 그 행실을 보아 거용하려 했다’고 기록돼 있다.
최 교수는 “왕실, 귀족 자제로 구성돼 심신을 단련했다”면서 “심신은 문무 모두를 말한다”고 강조했다. 무인이라며 싸움만 하고, 문인이라며 글만 읽는 게 아니었다. 오늘날로 치자면 문·이과를 나누지 않고 통섭형 인재, 보편적 지식인을 키워낸 셈이다. 우리 역사에서 이렇듯 칸막이를 허문 사례는 의외로 찾아보기 어렵다.
최 교수는 이어 “많은 화랑들이 삼국통일 과정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고 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한다.
이는 사군이충(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긴다)·사친이효(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긴다)·교우이신(믿음으로써 벗을 사귄다)·임전무퇴(싸움에 임해서는 물러남이 없다)·살생유택(산 것을 죽임에는 가림이 있다) 등 세속오계에 잘 드러난다.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의 계백과 싸우다 죽은 관창, 깊은 우정을 나눈 무관랑의 죽음에 따라 숨을 거둔 사다함 등이 세속오계를 지킨 대표적인 화랑으로 알려져있다.
지도층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에 휘하의 낭도는 물론 모든 신라인이 한마음으로 외적들과 맞서 싸울 수 있었다.
최 교수는 “재밌는 건 화랑도가 개방적인 구조라는 점”이라며 “고아 출신인 미시랑이 국선을 지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완충 지대로 기능한 셈이다. 역대 주요 국선으로는 설원, 김유신 등이 있으며, 경문왕의 경우 왕이 되기 전에 국선으로 화랑도를 이끈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