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오늘, 2021년 1월 4일 전국 각지에서 정인 양을 애도하는 뜻으로 보내온 근조 화환 100여 개 중 한 개에 쓰여있던 문구다.
당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정인 양 입양모 장모 씨의 재판이 열리는 서울남부지법 앞에 근조 화환을 설치하고 가해자 엄벌과 살인죄 적용을 촉구하는 시위에 나섰다.
정인 양 장지에는 수십 개의 꽃과 동화책, 장난감, 간식 등이 놓였고 ‘정인아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정인아 다음 세상에선 행복하고 사랑해’ 등 애도의 글도 채워졌다.
같은 해 1월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가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된 정인 양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사회적 분노가 확산했다.
‘장 씨 등 양부모에게 아동학대치사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3만여 명이 동의했고, 정인 양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어른들은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에 나섰다.
정인 양 입양 이후 3차례나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경찰과 아동보호기관은 증거를 찾지 못하고 부모에게 돌려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죄책감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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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아동학대 사건에 분노하고 슬퍼한 게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현재진행형’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또 잊혀졌다.
이를 꼬집듯 당시 “소아응급센터에서 진료한 지 6년 됐다”고 밝힌 한 누리꾼은 “학대로 숨진 16개월 아이의 일로 세상이 떠들썩하지만 사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우리에겐 일상에 가깝다”라며 “드라마틱한 과정과 결과가 알려지는 아이만 학대당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그렇기에 그 중심에서 매번 아이들을 마주하는 나는 ‘OO아 미안해’와 같은 SNS 챌린지나 국민청원, 가해자 엄벌을 위한 진정서 같은 것들이 역설적으로 얼마나 무의미하고 방관자적인지, 더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것이 얼마나 가벼운 셀프 속죄의 유희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정책 결정자들의 쇼 같은 법안 발의”, “실체 없는 보여주기식 행정”이라고 비판하며 “사실은 아무도 연관되고 싶어하지 않고 그래서 결국 아무도 진실로 책임지지 않는다. 그리고 학대받던 아이들은 대부분 돌볼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그 지옥도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탄식했다.
그는 “가해자 엄벌을 탄원할 것이 아니라 아동보호국을 정식으로 만들라고, 보호 아동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거기에 인력과 예산을 넣으라고 호소해야 한다”며 “사설기관과 민간병원에만 속수무책 떠넘겨져 있는 일을 나라에서 챙겨서 하라”고 강조했다.
또 “경찰에는 과연 학대 아동과 신고자를 보호할 재량과 능력이 있는가. 의사들은 신고 후 신분비밀과 생업유지 보장이 되는가”라고 물으며, “해결책을 제시하고 나부터 행동하고 싶지만 이런 사건의 중심에서 수십 번 같은 상황을 겪고 나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뜯어고쳐야 이게 가능한가 하는 회의가 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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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사건을 계기로 2021년 3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살해죄가 신설됐다. 아동학대살해죄는 징역형이 7년 이상으로, 일반 살인죄보다 처벌이 무겁다.
그럼에도 아동학대 범죄는 크게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아동학대 검거 건수는 2019년 4645건에서 2022년 1만1970건으로 2배가량 뛰었다. 지난해 1~8월 검거 건수는 8808건으로, 한 달에 1000건 이상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반해 주요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해결책으로 내걸었던 경찰 전담 인력 충원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2019~2023년 학대예방경찰관(APO) 인력 현황’을 보면 전국 시·도 경찰청의 APO 인력은 2021년 737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한 후 2022년 707명에서 지난해 8월 698명으로 줄었다.
경찰은 정인이 사건 직후인 2021년 8월 관계기관과 합동대책을 내놓으며 2323년까지 전문인력 260명을 추가 채용하겠다고 2025년까지로 미뤘다.
2022년 대법원은 정인 양의 사망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면서 양모 장 씨의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학대를 방임한 양부 안모 씨에 징역 5년을 확정했다.
그러나 ‘정인이 사건’이 끝난 건 아니다. 지금의 아동학대 건수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어디에선가, 특히 가까운 곳에서 잔혹한 폭력이 참혹한 죽음으로 알려진 뒤에야 또다시 ‘미안해’라고만 할 어른이 아닌지 환기해야 할 때다. 정인 양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