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루센티스 시장 4조...美-EU가 70% 이상
황반은 망막 중 시세포가 밀집된 부위로 나이가 들수록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이 부위에서 여러 변화가 나타난다. 이를 통칭해 황반변성이라 부른다. 주로 망막 주변에서 신생혈관이 생겨 노폐물이 유입될 때 관련 증상이 생긴다고 알려진다. 증상이 심하면 실명으로 이어지는 안과질환이다.
스위스 로슈는 2006년 1달 간격으로 주사하는 용법으로 개발한 황반변성 치료제 루센티스에 대해 미국 내 품목허가를 획득했다. 해당 약물은 ‘혈관생성내피인자’(VEGF)-A를 억제해 눈 주위에서 새로운 혈관이 생성돼는 것을 막아 노폐물이 쌓이지 않도록 유도한다. 이후 루센티스는 적응증을 확장해 미국이나 EU, 한국 등 에서 △습성 황반변성(AMD) △망막 정맥 폐색 후 황반부종(RYO) △당뇨병성 황반 부종(DME) △당뇨병성 망막병증(DR) △근시성 맥락막신생혈관형성증(mCNV) 등 5종의 적응증을 보유하게 됐다.
로슈에 따르면 2021년 루센티스의 세계 매출은 34억 달러(당시 한화 약 4조4000억원)로 집계됐다. 이중 미국 시장의 매출이 1조 8000억원으로 전체의 41%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루센티스 매출의 유럽 시장 규모는 명확하게 집계되지 않으나, 업계에서는 전체의 30% 안팎의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루센티스의 물질 특허가 미국과 유럽에서 각각 2020년 6월과 2022년에 만료됐다. 여기에 맞춰 각국의 제약바이오기업이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에피스의 바이우비즈(국내 제품명 아멜리부)와 코히러스의 시멀리가 차례로 출시됐다. 올해 유럽에서도 관련 약물의 출시가 예고되고 있다.
◇삼성에피스-코히러스, 루센티스 최대 시장 美서 격돌
올 상반기에는 오리지널과 바이우비즈, 시멀리 등이 미국 루센티스 시장에서 맞대결을 펼친다. 이어지는 하반기에는 엑스브레인의 심루시가 추가돼 총 4종의 약물이 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에피스가 지난해 6월 루센티스 퍼스트 바이오시밀러 바이우비즈를 출시했다. 바이우비즈는 미국에서 단일사용량(0.5㎎) 기준 1130달러(19일 기준 한화 약 139만원)이다. 오리지널인 루센티스 대비 40% 저렴한 가격으로 확인됐다. 바이우비즈는 현재 AMD와 RYO, mCNV 등 3종의 루센티스 적응증을 확보한 상태다.
에피스의 안과질환 바이오시밀러 관련 글로벌 유통 파트너사는 미국 바이오젠이다. 회사에 따르면 출시 후 4개월이 지난 9월 말 기준 바이우비즈는 120만 달러(한화 약 1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후발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한 코히러스가 올해 자사 물질 매출 확대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 회사는 독일 포마이콘과 공동 개발한 인터체인져블(대체가능) 바이시밀러 ‘시멜리’를 승인받아,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오리지널 대비 30%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한 바 있다. 코히러스는 올해 미국 내 시멜리의 순매출이 1억 달러(한화 약 1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인터체인저블 바이오시밀러로 승인된 시멜리는 오리지널 대신 임의로 약국에서 처방 약물을 변경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례로 과거 실테조라는 약물이 자가면역치료제인 ‘휴미라’(성분명 아달리무맙)의 인터체인저블 바이오시밀러로 미국에서 승인돼 화제를 모았었다.
다만 실테조는 약국 내 처방 변경 이점을 곧바로 누릴 수 있었지만, 시멜리는 의사가 직접 병원에서 주사하는 만큼 이런 교차 처방 이슈로 인한 매출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에피스 관계자는 “시멜리가 루센티스의 모든 적응증에 허가를 받아, 바이우비즈 보다 활용 범위는 넓다”며 “하지만 약국 내 처방변경과 관련한 이점은 무용지물이다. 결국 병원 영업이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미국 내 인터체인저블 바이오시밀러 승인 기준이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다. 교차 임상과 같은 추가 데이터 없이 시멜리가 미국에서 관련 지위를 획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시멀리가 다른 바이오시밀러 대비 더 월등한 것을 입증한 것은 아니다. 퍼스트 바이오시밀러로서 바이우비즈의 매출 확대가 충분히 가능하리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국내 바이오시밀러 개발 업계 관계자는 “통상 퍼스트 바이오시밀러가 저렴한 가격 경쟁력으로 시장을 흡수해 나간다”며 “하지만 인터체인저블로 비교우위를 확보한 바이오시밀러가 5개월 만에 시장에 등장해 바이우비즈의 매출 증대에 난항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올 하반기 중으로 심루시의 미국 시장 진입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엑스브레인은 올 1분기 중 심루시의 허가 신청서(BLA)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다시 제출할 예정이다. 지난해 5월 FDA가 심루시에 대해 추가 자료를 요청하며 한번 되돌려 보낸 바 있기 때문에, BLA 재제출 시 절차상 60일 내로 관련 결론이 나오게 된다.
앞선 관계자는 “심루시가 예정대로 허가 신청이 이뤄져 긍정적 결과가 나온다면, 연내 오리지널을 포함한 4종의 약물이 미국 내 루센티스 시장을 나눠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EU, ‘바이오젠-테바-스타다’ 등 루센티스 시밀러 유통 3사 맞대결
미국을 넘어 유럽과 영국, 캐나다 등으로 루센티스 바이오시밀러 대전이 확장된다. 먼저 바이오젠은 올해 유럽과 캐나다에서 바이우비즈의 출시를 예고하고 나섰다. EU와 캐나다로부터 2021년 8월과 지난해 3월 해당 약물에 대해 승인을 받았다.
최대 경쟁제제인 시멀리도 영국과 유럽에서 각각 지난해 5월과 10월에 승인됐다. 복제약(제네릭) 전문 개발 및 유통 기업으로 널리 알려진 이스라엘 테바가 영국에서는 ‘온가비아’(Ongavia), 유럽에서는 ‘라니비시오’(Ranivisio)라는 이름으로 시멀리 관련 제품의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맞설 세 번째 주자 ‘심루시’는 바이우비즈보다 1년 이상 늦은 지난해 11월에 유럽에서 허가됐다. 이 약물은 엑스브레인과 독일 스타다 등이 공동개발했으며, 지난 16일(현지시간) 영국 의약당국도 심루시를 품목 허가했다. 이 약물 역시 EU와 영국 등에서 시멀리처럼 동시 출격이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지난해 11월 바이오시밀러 전문 유통 기업인 스타다는 2023년 초 유럽 내 27개국에서 심루시를 출시할 것이라 공표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과거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와 항암제 아바스틴 ‘아바스틴’(성분명 베바시주맙)을 비롯한 5종의 바이오시밀러를 유럽에서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바 있다.
피터 골드슈미트 스타다 CEO는 “125년간 다져진 유럽 전역의 광범위한 영업망을 통해 바이오시밀러를 출시했던 경험이 있다”며 “우리가 맡은 6번째 바이오시밀러인 심루시의 유럽 진출과 점유율 확장을 이뤄 가겠다”고 자신했다.
국내 바이오시밀러 개발업계 한 임원은 “테바나 스타다는 세계적인 유통망을 확고하게 입증한 기업이다”며 “신경 질환 강자로 알려진 바이오젠의 시밀러 유통 능력이 이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동의했다.
에피스 측은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파트너사인 바이오젠은 치매 등 신경질환 전문인 것은 맞지만 신경과 관계되는 안과질환에도 관심이 많았다”며 “이미 우리가 개발한 바이오시밀러 관련 유통 실적을 바탕으로 바이오젠과 2019년 안과질환 물질 관련 유통 파트너십을 추가로 맺었던 것”이라고 운을 뗐다.
실제로 에피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바이오젠이 미국과 유럽 등에서 판매한 4종의 바이오시밀러 매출은 5억7630만달러(당시 약 8132억원)에 달했다. 앞선 관계자는 이어 “자가면역질환 관련 3종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유럽 내 처방 수가 27만 여 건에 이른다”며 “안과질환 분야에서 타사의 유통망 못지않게 우리도 탄탄하다. 바이우비즈의 매출 확대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