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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지난 연말 서원주 신임 기금이사(기금운용본부장·CIO)를 임명하면서 하반기부터 공석이었던 자리를 채웠다. 이로써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연금 이사장과 기금이사까지 차례로 각 수장의 부재를 메우게 되면서 그동안 구석에 얼어 붙어 있던 정책들 처리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 2021년 말부터 가장 높은 단계의 주주권 행사인 대표소송의 개시 결정 권한을 기금운용본부에서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탁위)로 넘기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수탁위가 주주대표소송과 다중대표소송을 모두 포괄하는 대표소송 개시 권한을 갖게 되면 소송을 남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하면 국민연금 직접 투자한 기업뿐만 아니라 이들의 자회사 이사 등도 대표소송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안을 두고 재계에서 수탁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지적하는 등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지난해 새 정부가 출범하고 수장 자리가 잇따라 공석이 되면서 논의에 제동이 걸렸다. 국민연금은 대표소송 관련 지침을 매듭짓고자 별도의 소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소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용진 전 국민연금 이사장의 사임에 따라 공백이 생기며 사실상 논의를 중단한 바 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법무법인 3곳에 개정안의 적법성을 따지기 위한 법률자문을 맡겼고, ‘적법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지난 하반기부터 논의가 본격적으로 재개됐다. 다만, 당시엔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 위원장을 맡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 이사장 등 줄줄이 공석인 상태여서 해당 안건이 기금위에 상정되지는 못했다. 찬반 논란이 거센 만큼 위원장 대행 체제로 진행되는 기금위에서 결론을 내리기엔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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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해결해야 할 숙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2021년 탈석탄 투자를 선언한 지 벌써 2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연구용역을 마친 지난해 4월 이후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올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등 다양한 변수가 겹치면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가 위축되는 분위기였고, 마찬가지로 국민연금 기금위도 아직까지 구체적인 의견을 내놓지 않는 상태다.
지난 2021년 말 석탄채굴·발전산업의 범위 및 기준 등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맡은 딜로이트안진은 구체적인 투자제한 전략으로 총 세 가지를 제시했다. 1안과 2안은 석탄 관련 매출 비중이 30%가 넘는 기업에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이며, 3안은 그 기준을 50%로 완화하는 안이다. 다만, 1안과 2안은 매출 비중이 30%라는 점은 같지만, 에너지 전환 계획 명시 여부 등 정성 기준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국민연금과 보건복지부 수뇌부 라인이 모두 갖춰졌고, 논의가 지연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재계나 환경단체 등의 반발이 커지고 있어 기금위 안건 상정부터 시급한 상황이다. 지난해 9월엔 국내외 170여개 환경시민단체가 김 이사장에게 탈석탄을 선언하고도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 않는다며 석탄 산업에 대한 투자 배제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업계 안팎에서도 올해 첫 기금위에서 해당 사안들이 상정돼 그간 묵은 체증을 해소할지 주목하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보건복지부 장관부터 이사장, CIO까지 이제 모든 자리가 채워졌으니 다음 기금위에서 그동안 논의가 미뤄진 사안들에 대해 결론을 낼 필요가 있다”며 “특히 최근 열린 간담회에서 이사장과 CIO 모두 ESG 책임투자와 수탁자책임원칙 등을 강조했기 때문에 새해에는 속도감 있게 정책들이 추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