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대표는 “각종 해외 인쇄 박람회에서 기술력을 높게 평가 받았지만 공장을 보여달라는 요구에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 컸다. 이제 본격적으로 제품을 생산해 매출을 올리는 일만 남았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회사를 찾아간 지난 21일에도 HG코리아의 제품에 관심을 가지고 인도 바이어들이 화성 공장을 찾았다. 안 대표는 “이런 공장이 없었다면 차마 바이어들에게 한국을 찾아달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올해를 원년으로 삼아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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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대표는 지난해 말 세계에서 4번째로 플렉소CTP(FlexoCTP)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플렉소CTP는 기존 CTP보다 10배 이상 많은 양의 인쇄물을 찍어낼 수 있다. 이 제품은 소주나 맥주병과 각종 PET병, 화장품 용기 등에 부착하는 라벨과 스티커에 문자와 디자인 등을 인쇄하는 데 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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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재창업을 결심한 것은 2011년. 1990년부터 인쇄 업계에 발을 담은 그는 인쇄 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나가기 위해 남보다 앞선 기술을 자체 개발키로 결심했다. 2011년부터 꾸준히 기술 개발에 공을 들인 덕에 2012년에는 플렉소CTP 출력장치 특허를 취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 이듬해 제품 양산에 성공한 안 대표는 자본금 2억원을 들여 HG코리아를 설립했다.
이렇게 그가 재창업으로 탄탄하게 자리를 다지기까지는 10여년이 걸렸다. 이전에 그는 2번의 사업 실패를 맛봤다. 안 대표는 “1990년 외국에서 인쇄용 필름 장비를 들여와 2000년까지 1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며 “당시에는 활판으로 직접 찍어낸 인쇄 방식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만큼 보다 저렴하고 새로운 기술인 필름 인쇄로 안정적인 사업을 해나갔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로 인한 불황의 직격탄을 그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는 “IMF가 터지자 매출처로부터 미수금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2000년에는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첫 번째 폐업을 겪은 그는 2002년 다시 인쇄 장비 유통업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필름 형태의 인쇄 장비가 아닌 한창 신기술로 떠오르는 CTP 장비 수입을 택했다. 첫 폐업이 IMF 때문이라고 여겼던 그는 과거 필름 장비를 수입해 사업을 일궜던 1990년대처럼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외부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제품을 들여오기로 했던 미국의 제조업체가 영국계 회사에 합병되면서 더이상 제품을 들여올 수 없게 됐던 것이다. 안 대표는 “인쇄 산업을 주도하던 외국 기업마저도 M&A(인수합병) 과정에서 유지 비용이 많이 드는 인쇄 장비 제조업을 접고 인쇄용 소프트웨어(SW) 업체로 업종을 전환했다”며 “여러 번 실패 끝에 자체 기술을 확보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생각으로 직접 인쇄 장비 제조에 나서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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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대표는 “주요 하드웨어인 레이저 자동조절 기술과 세계 최초의 4배열 시스템 등을 제외한 나머지 부품과 장비들은 외부 업체로부터 들여오고 있다”며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정밀 조립을 주력으로 하다보니 직원 6명만으로도 완성품을 만드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원천 기술을 확보한 HG코리아는 지난해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매출 17억원 중 8억원이 신제품 플렉소CTP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안 대표가 10년간 공을 들인 신기술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셈이다.
안 대표는 “앞으로 양산을 통한 가격 경쟁력과 품질 측면에서 글로벌 시장을 점유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며 “국내에서도 사람들이 중국산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 많은 사람들이 중국산 장비를 쓰면서 실망이 커진 만큼 손쉬운 사용과 안정성을 무기로 국내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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