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평등급 A·A, 매출 130억에도 예심 고배
아직 1분기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벌써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3곳이 예심을 자진철회했다. 앰틱스바이오, 레드엔비아, 레메디다. 모두 기술성평가는 통과했지만 예심단계에서 좌초됐다. 그 중 혁신형 의료기기 회사인 레메디의 경우엔 기술성평가 통과등급인 A, BBB를 상회하는 A, A 등급을 받았는데도 고배를 마셨다. 업계에서는 “기술성평가를 받는 의미가 무엇이냐”는 의문도 터져나온다.
레메디는 2012년 이레나 이화여대 교수가 창업한 휴대용 방사선의료기기 업체다. 지난 2019년 ‘REMEX-KA6’을 출시했고, 매출을 내기 시작했다. 일본 외무성을 비롯해, 작년 미국 나사(NASA)에 납품을 이뤄 이목을 끌었다. 2023년 ‘조달의 날’에 혁신제품수출 부문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2024년 ‘500만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레메디 매출의 8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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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나 레메디 고문은 “매출을 내는 기업 중 일반상장을 선택해야 할 회사들이 기술특례상장으로 기업가치를 부풀리려 악용하는 사례에 (레메디가) 피해를 본 것 같다. 레메디는 기술회사인데 이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자평했다.
이 고문은 “현재 레메디는 사업적 ‘터닝포인트’에 돌입했다. 원래 하던대로 점진적 성장을 이루는 방향이 있고, 자금투입을 통한 점프업 성장을 이루는 길이 있다. 예심을 통과했더라면 최대 250억원가량을 공모조달해 중국, 일본 등이 모방제품으로 따라잡지 못하도록 개발속도에 박차를 가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앞으로의 사업 진행에는 해외자본 유치 등 외부조달을 검토하겠다. 조달규모는 최대 500억원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레메디의 마지막 자금조달 시기는 2022년으로, 최근 감사보고서 기준 2023년말 잔여 현금은 8억원가량이다. 이 고문은 이 회사 지분 44%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기존 재무적투자자(FI)는 2023년말 기준 인터밸류파트너스, LG전자, 다원시스, KB증권, 나녹스(NANO-X IMAGING) 등이다. 개인주주외 89명이 약 30% 지분을 가졌다.
◇기술성보다 시장성에 무게중심
최근 거래소가 암묵적으로 강조하는 특례상장 요건은 신약개발사의 경우 휴먼 PoC(개념검증) 데이터와 유의미한 선급금의 기술이전(L/O) 이력, ‘돈 버는’ 의료기기 회사의 경우 기평단계에서 100억원, 예심단계에서 200억원의 매출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약 2년 주기의 거래소 인사로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상장허가 기준이 달라지는게 벤처회사들에겐 예측불가능한 리스크”라며, “최근 흥미로운 기술을 가진 바이오벤처 두 곳을 발견했지만 과연 이들이 200억원대 매출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회수 불확실성에 투자 집행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예심 청구 후 결과를 대기 중인 곳은 제노스코, 지씨지놈, 프로티나, 지에프씨생명과학(코넥스 이전), 노벨티노빌리티, 지투지바이오, 뉴로핏이다. 이 중 작년 10월 예심을 청구한 제노스코가 조만간 결과를 받아들 것으로 예상된다. 제노스코는 미국 FDA 신약승인을 받은 항암제 ‘레이저티닙’의 원개발사라는 이유로 기평에서 AA·AA 등급을 받았지만 최대주주인 오스코텍(039200)의 개인주주들이 ‘쪼개기 상장’ 반대에 나서 역풍을 맞았다. 거래소 측에서도 오스코텍과 구분되는 제노스코만의 아이템을 가져올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술특례 상장 기업에 시장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특례상장의 의미는 퇴색된게 아닐까. 앞서 상장한 바이오 기업들의 퍼포먼스를 보면 거래소가 칼을 빼든 이유도 이해 못하는건 아니지만, 높아진 상장 문턱에 국내 기술이 글로벌 무대에서 뒤쳐질까 두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다. 코스닥 상장사 중 요즘 거래소 기준으로는 상장 못할 곳이 수두룩하다. 기존 기술특례상장 기업들에도 올해 상폐 바람이 불 것”이라고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