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신약 임상]① 인공지능 신약개발, 선점 노리는 글로벌 대표 주자들

김승권 기자I 2024.12.24 07:30:55
신약 개발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성공 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화이자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를 출시한 지 9개월 만에 매출 3조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동시에 실패 위험이 높고 장기 투자가 요구된다. 신약 하나 개발하는데 평균 15년에 걸쳐 1조원 이상의 비용(기회비용 포함)이 소요된다. 성공률은 미국 바이오협회 기준으로 7.9%에 불과하다.

이 비효율성을 인공지능(AI)이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AI를 활용하면 신약 개발 기간을 7년으로 단축하고, 비용을 6000억원 수준으로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 글로벌 빅파마와 빅테크들이 경쟁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드는 이유다. 현재 AI신약개발 임상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팜이데일리는 임상 시험 심층 분석을 통해 AI 신약 개발 바이오텍의 경쟁력을 평가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김승권 기자] AI신약개발 관련 기업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AI신약개발 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해 제약 회사에게 판매하는 회사와 직접 AI를 활용,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해 신약개발을 진행하는 경우다. 전자의 경우 독일 제약사 머크, 한국의 히츠 등이 대표적이다. 후자는 미국 리커전테라퓨틱스, 홍콩 인실리코메디슨, 한국의 보로노이(310210), 이노보테라퓨틱스, 갤럭스 등이 있다.

두 시장 모두 초기 단계로 성장성이 무궁하다. 구글을 비롯한 빅테크들은 소프트웨어 개념에서 접근하고 있고 제약사와 스타트업들은 직접 임상시험을 실시, 기술 이전이나 신약 개발 ‘잭팟’을 노리는 추세다.

◇ AI 신약개발, 글로벌 임상 현황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크리니컬트라이얼즈에 따르면, 작년 기준 AI를 활용한 임상시험은 총 1584건에 달한다. 암 관련 연구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암 분야에서는 452건의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 중 일부는 FDA 승인을 받은 약물들이다. 그 외 희귀질환 치료제 등 세상에 없던 퍼스트인클래스 신약 개발에 AI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유효성 검증 단계인 임상 2상에 진입한 기업은 전 세계에서 5곳 정도로 파악된다. 먼저 홍콩에 본사를 둔 인실리코 메디슨(Insilico Medicine)은 AI 플랫폼을 활용하여 불과 46일 만에 특발성 폐섬유증(IPF) 치료제인 ‘INS018_055’를 발굴했다. 이 약물은 AI 설계를 통해 2023년 7월부터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최초로 AI가 약물 디자인 전과정을 주도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긍정적인 임상 성과도 입증했다. 이 회사는 71명의 IPF 환자를 대상으로 한 2a상 임상시험에서 안전성과 유효성 입증했다. 구체적으로는 폐 기능 개선에 있어 용량 의존적 반응을 확인했다.

알렉스 자브로코브(Alex Zhavoronkov) 인실리코메디슨 공동 대표는 “이렇게 짧은 투여 기간 후 명확한 용량 의존적 효능 신호를 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데이터= Jayatunga et al., 2024, 삼성증권)
미국에서 엔비디아에게 투자를 받은 리커전테라퓨틱스(Recursion)도 임상 2상에 진입한 회사다. 이 회사는 재발성 디피실 균은 씨디피실(C. diff) 감염 치료를 위한 경구용 비항생제 소분자 ‘REC-3964’의 2상 임상시험에 첫 환자 투여를 시작했다. 이 약물은 항생제와 달리 장내 미생물군을 교란시키지 않고 세균 독소를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리커전 관계자는 “미국에서 연간 17만5000건의 재발성 C. diff 감염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해당 약물이 신약이 되면 20억 달러 규모의 의료비용 절감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리커전은 지난 9월 뇌해면체 기형(CCM) 치료제 후보물질인 REC-994의 시카모어(SYCAMORE) 임상 2상 톱라인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해당 임상에서는 안전성은 확보했지만 통계적 유효성이 기준치에 미치지 못했다.

임상 1상에서는 다수의 기업이 안전성 확보에 나선 상황이다. 최근 리커전 자회사로 편입된 영국 엑센시아(Exscientia)는 종양학과 면역학 분야에서의 약물 개발을 1/2상 단계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는 AI 설계 약물이 인간 임상시험에 진입한 최초 사례다.

아스트라제테카와 협업으로 주목받은 영국의 베네볼런트AI도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를 대상으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이 회사는 약물 변경으로 의약품 완제품 승인까지 받은 사례가 있다.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 바리시티닙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전환해 FDA 승인을 받은 것이다. 다만 아토피 피부염 치료 후보물질(BEN-2293)의 임상 2a상에서는 가려움증과 염증을 개선하지 못해 유효성 입증에 실패한 경험도 있다.

◇“우리 AI SW쓰면 신약개발 빨라져요”...SW 기업, 상황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머크, 구글, 엔비디아 등이 공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머크가 현재 가장 앞서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회사 측 데이터에 따르면 글로벌 빅파마 상위 50%가 머크의 AI신약개발 플랫폼을 쓰고 있다. 점유율 기준 글로벌 1위 수준이다.

프라사드 머크 라이프사이언스 아태 AI사업 부문장은 “머크의 에디슨(AIDDISON)과 같은 플랫폼은 수십억 개의 화합물을 몇 분 안에 스크리닝해 유사한 약물을 찾아내고, 최적의 후보를 3D 모델링으로 평가한다”며 “디스커버리 단계에서 기존에는 몇 달이 걸리던 작업을 몇 시간 만에 끝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신약개발 회사 특징 정리 (데이터= 딥파마인텔리전스(DPI) Artificial Intelligence for Drug Discovery 2023, LG경영연구원)
구글의 경우, 후보물질 발굴을 위해 필요한 근원적 단백질 분석 플랫폼 기술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유했다. 해당 기술로 올해 노벨 화학상까지 받았다. 이 플랫폼은 단백질, DNA, RNA, 작은 분자(small molecule) 등의 결합구조를 예측하는 것이 목적이다. 신약개발 단계로 보면 스크리닝 및 유효물질 탐색에 주로 사용된다. 즉, 신약개발 극초기 단계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인 것이다.

김우연 히츠 대표는 “현재 공개된 알파폴드3는 결합 구조만 예측할 수 있어서 신약개발 전단계로 보면 아직까지는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될 것 같다”며 “보다 파급력을 높이려면 구조 예측과 더불어 약물의 다양한 물성 및 독성 예측 등으로 확장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엔비디아가 개발한 AI신약개발 플랫폼은 기술적으로 뛰어난 게 아니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김우연 대표에 따르면 바이오네모는 알파폴드처럼 하나의 목적성을 가진 기술이 아니라 다양한 AI 기술들을 모아서 클라우드 형태로 서비스 할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이다.

김 대표는 “바이오네모에 탑재된 AI 기술들은 대부분 엔비디아에서 직접 개발한 것이 아니라 아카데미에서 논문으로 공개된 모델(즉,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코드)들을 탑재해 놓은 것”이라며 “이 모델들 역시 주로 신약개발 초기 단계에서 유효물질 발굴, 설계, ‘docking’, 물성 예측 등에 응용될 수 있는 기술들”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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