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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에게는 불리한 증언이었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관련한 재판은 피해자와 합의 여부가 양형에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합의하면 다소 가볍게, 그렇지 않으면 보다 무겁게 형이 내려질 수 있다. 최씨가 선임한 변호인을 통해 임씨와 합의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그런데 임씨가 당시 강압적으로 합의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한 것이다. 임씨의 말대로라면, 법원이 최씨를 곱게 볼 리가 없었다.
증언을 마치고 법정을 나선 임씨. 20대 남성 3명이 임씨를 둘러싸고 어디론가 끌고 가려고 했다. 임씨는 이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사력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법원 앞 4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도망하던 임씨는 뒤쫓던 일당에게 붙잡혔다. 이들은 노점상이 팔던 식칼을 집어들어 임씨를 공격했다. 급소를 찔린 임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뒀다.
목격자에 따르면, 20대 남성들은 임씨에게 다가가 “왜 증언을 그런 식으로 하느냐”며 끌고 가려고 했다. 법정 증언에 불만을 품고 저지른 살인이었다. 법원의 권위와 검찰의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이대로 둬서는 앞으로 숱한 증인이 법정에서 진실대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검찰은 전담 수사팀을 꾸리고 범인을 추적했다. 최씨가 폭력조직을 꾸리고 송파구 일대 유흥주점에서 보호비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해온 점이 단서였다. 관련된 조직폭력배가 줄줄이 연행돼 구속되는 와중에 증인 살인사건 용의자로 스물네 살 변운연씨가 특정됐다.
최씨의 친구인 변씨는 임씨가 불리한 증언을 한 데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변씨는 수사망이 좁혀오자 범행 12일 만에 자수했다. 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된 변씨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1997년 12월30일. 법무부가 집행한 사형수 명단에 변씨 이름이 올랐다. 변씨의 나이 서른한 살에 형장 이슬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은 이날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사실상 사형 폐지국가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