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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모인 그 날…빨랫감 통에 '털썩' 母 시신 떨어졌다[명절 잔혹사]

이선영 기자I 2023.01.23 00:00:35

지난 설 동안 가정폭력 약 4000건 신고…하루 평균 1000건
경찰 "설 연휴 맞아 상황 관리관 경무관급으로 격상해 운영"
가정의 불화로 빚어진 참극…"피해자 위한 신고 환경 만들어야"

[이데일리 이선영 기자] “당신의 가족은 이번 설날을 무탈하게 보냈나요?”

[편집자주] 각지에 떨어져 있던 가족이 한데 모이며 설레고도 반가운 마음을 안기는 ‘설날’. 물론 모두가 즐겁진 않겠지만 누군가에겐 애틋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 날이다. 기껏해야 사나흘 내외로 주어지는 휴일, 짧은만큼 더 소중하게 대하라 했던가. 곳곳에서 화목한 웃음소리와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는 어머니의 목을 졸라 살해했고 아버지의 복부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으며, 내연녀의 집을 찾아가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렇게 행복한 웃음과 지옥을 맛보는 비명이 공존하는 설날이 이번에도 다시 찾아왔다.

(사진=MBN 캡처)
지난해 9월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연도별 가정폭력사건 접수 현황’에 따르면, 지난 해 설날(2022년) 연휴에만 총 4026건의 가정폭력 신고가 112에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평균 1000여건의 신고가 접수된 셈이다.

조사가 시작된 지난 2017년 설 연휴 때는 4307건, 2018년 4130건, 2019년 4771건의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됐다. 코로나19 여파로 가족 모임이 덜했던 2020년에는 3460건, 2021년에는 3376건으로 줄었다. 추석도 이와 비슷한 수치다.

일각에선 112에 접수된 가정폭력 신고 건수 외에도 신고하지 못한 숨겨진 가정폭력이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송한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이와 관련 “해외에서는 마트 등 일반 사업장에도 가정폭력을 신고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112신고 외에는 다른 창구가 없다”라며 “또한 신고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피해자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피해자가 신고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경찰청 또한 이를 자각하고 있는 모양새다. 경찰청은 지난 16일 “최근 3년 동안 설날 연휴 기간 전체 112신고 건수는 줄었지만 살인과 강도, 가정폭력 등 중요범죄는 9% 이상 급증했다”며 “설 연휴를 맞아 상황 관리관을 경무관급으로 격상해 운영할 예정”이라 밝혔다. 중요 범죄와 재해·재난을 대비해 지난 21일부터 오는 24일까지 나흘동안 경무관이 전국 치안관리를 총괄하도록 한 것이다.

◇‘결혼 반대’에 격분…설 연휴 첫날 母 살해 뒤 빨랫감 통에 시신 숨겼다

지난 2019년, 설 연휴 첫날이었던 2월 2일 오전 7시경 A씨는 익산 한 아파트에서 자신의 어머니(66)를 목 졸라 살해했다.

범행 이후 A씨는 빨랫감을 담는 플라스틱 통에 어머니의 시신을 넣고 누군가 빨래통을 열어도 범행이 탄로 나지 않도록 어머니의 옷을 벗겨 시신 위에 덮어놓기까지 했다.

A씨의 동생은 어머니가 종일 연락이 되지 않자 경찰에 이를 신고했고, A씨는 “어머니가 장을 본다고 해 마트에 데려다 준 이후로 보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A씨는 경찰의 거듭된 추궁에 범행을 털어놨다. 조사 결과 A씨는 최근 중국 국적 여성과 혼인신고를 했는데, 어머니가 결혼에 반대하며 뺨을 때리자 목을 조른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어머니와 말다툼을 벌이다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범행 사실을 인정했다.

◇“집 추우면 옷 입으라”는 아버지 말에 흉기 꺼내든 아들

보일러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던 아들이 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 2020년, 설날 당일이었던 2월 25일 오후 4시경 광주시 오포읍의 한 아파트에서 아들 B(22)씨가 휘두른 흉기에 아버지 C(51)씨가 복부 등을 심하게 찔려 소방구조대가 출동했으나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숨졌다.

B씨는 당시 “집안이 추워 보일러 온도를 높여야겠다고 말했는데 아버지가 ‘추우면 옷을 입으라’고 했다”며 “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이다 격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사건 당일 B씨는 미리 준비해 둔 흉기를 꺼내 아버지 C씨의 복부 2~3차례를 찌르고 얼굴 등에 휘둘렀다.

B씨는 지난 2016년부터 C씨와 대화가 단절되는 등 평소 사이가 좋지 못한 상황이었으며, 평소에도 보일러 문제로 C씨와 자주 마찰이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조사에서 B씨는 “초등생부터 앓고 있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로 심신장애, 심신상실로 인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우발적 사고로 인한 범행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장기간 가정폭력과 무시, 멸시에 따라 자신이 육체·정신적 피해를 당했다고 했다.

◇내연녀의 “헤어지자”는 말에…흉기 휘두르고 불 지른 남성

내연관계인 여성이 결별을 요구하자 가족을 흉기로 위협하고 집에 불까지 지른 50대 남성도 있다.

지난 2018년 설날인 2월 16일 오후 10시경 D(57)씨는 광주 남구 내연녀 E(63)씨의 집에 찾아가 불을 질러 거실과 안방 일부를 태웠다. 또 아들(38)을 흉기로 위협해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경찰 조사결과 D씨는 설날을 맞아 E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술을 마신 뒤 시너를 담은 생수병 2개와 흉기를 가지고 E씨 집을 방문해 집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들이 들어오자 흉기를 휘둘러 왼팔에 찰과상을 입힌 뒤 집안에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D씨는 30년 전부터 알고 지낸 E씨가 여러 차례 헤어지자고 하자 위자료 명목으로 5000만원을 요구하는 등 지속적으로 괴롭힌 것으로 알려졌다.

명절 사건사고를 막는 가장 큰 힘은 결국 평온한 가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명절 발생하는 강력사건을 보면 가정불화가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따뜻하고 평화로운 가정, 공동체 치안이 사건사고를 막는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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