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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예술품다①] 옛 쌀 창고에 문화예술창작공간이 들어서다

강경록 기자I 2017.10.01 00:00:01

충남 서천군 장항읍 판교면 현암리
한국관광공사 추천 10월 가볼만한 곳
글·사진 정은주 여행 작가

일제강점기 시절 쌀창고였던 곳이 장항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미곡 창고가 지역민과 여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충남 서천군 장항항 앞에 있는 서천군 문화예술창작공간이 그곳이다.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장항읍은 1930년대 일제가 약 172만 ㎡에 달하는 바닷가를 매립해서 만든 도시다. 일제는 새로 얻은 토지에 항구와 철길 등 물자를 수탈하기 위한 시설을 갖췄다. 전국에서 수탈한 자원과 곡식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도 항구 주변에 지었는데, 그중 하나가 서천군 문화예술창작공간이다. 당시 이곳은 쌀을 보관하는 미곡 창고로 사용됐으며, 건물 내부 콘크리트 기둥과 목조로 짠 천장 골격 등 건축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덕분에 2014년 등록문화재 591호(서천 구 장항미곡창고)로 지정됐다.

장항문화예술창작공간에는 여러가지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서천군 최초 근대문화유산 ‘장항미곡창고’

서천군 최초의 근대 문화유산인 장항미곡창고는 개·보수를 최소화해 2015년 복합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이제 눈물 섞인 쌀 대신 이곳에는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문화 예술의 향기가 가득하다. 누구나 자유롭게 전시를 관람하고, 아이들과 함께 인형극(둘째 금·토요일 상연, 자세한 일정은 블로그 참조)을 감상하며, 언제든 내 손으로 도자기에 색을 입히거나 모시꽃 만들기 같은 체험에 참가할 수 있다. 커피와 차를 마시며 쉬기 좋은 카페도 있다.

장항문화예술창작공간에서는 주말에도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도 열린다
아이들과 함께 서천8경 퍼즐을 맞추고 여행 엽서를 만들다 보면 소중한 추억이 차곡차곡 쌓인다. 금요일 저녁에는 천연 화장품과 꽃차 만들기 같은 체험을 진행한다. 추석 연휴에도 문이 활짝 열리니 차례를 모시고 가족과 함께 찾아볼 만하다. 10월에는 특별한 공연이 준비된다. ‘선셋페스타’의 일환으로 20일에 기타리스트 박주원 씨의 무대가 마련되고, 21일에는 창작 인형극 〈꿈꾸는 굴뚝〉이 공연된다(월요일 휴관).

맛집들이 모인 장항6080음식거리
건물 뒤쪽에는 약 20개 음식점이 모인 장항 6080 음식 골목길이 있다. 도시가 번성한 시절에는 이곳도 북적였을 테지만 지금은 한산하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지켜온 맛까지 달라진 건 아니다. 대를 이어온 아귀찜을 비롯해 구석구석 숨은 맛집이 많아 문화예술창작공간 관람 후 식도락 코스로 잡으면 딱 알맞다. 길 끝에는 서천에서 유일한 개봉관인 기벌포영화관이 있다. 규모가 작은 대신 관람료가 저렴해 온 가족이 부담 없이 찾기 좋다(추석 당일 오전 휴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판교면 현암리 풍경
◇낡고 하름한 모습 그대로

서천군 문화예술창작공간이 옛 창고를 재활용해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났다면, 판교면 현암리는 낡고 허름한 모습 그대로 여행자를 불러 모으는 독특한 명소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오래전 삶의 흔적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눈앞에 고스란히 펼쳐진다. 어릴 적 향수 어린 풍경을 꼼꼼하게 되살린 기분이다.

판교역에서 800m 남짓 걸어 내려가면 곧 마을에 들어선다. 한적한 분위기는 여느 시골과 다르지 않지만, 골목골목 보이는 녹슨 함석지붕과 나무틀에 유리창으로 마감한 낡은 건물이 드라마 세트장에 온 느낌을 준다. 유리마다 촌스러운 필체로 쌀, 사진관, 잡곡 일절 같은 단어가 적힌 풍경이 낯설면서도 정겹다. 이런 곳이 아직 남았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많은 이들을 웃기고 울린 영화관도, 분주하게 돌아간 양조장도 오래전 문을 닫아건 채 시간이 멈췄다. 양조장의 녹슨 철망 틈으로 보이는 2000년 달력과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책상이 무심하게 흘러간 시간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곳에는 지금도 끝자리 0·5일에 오일장이 선다. 판교오일장은 우시장이 열릴 정도로 충청도 일대에서 손꼽히는 장터였다고 한다. 교통이 발달하고 우시장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면서 작은 시골 장터가 되었지만, 장이 서는 날에는 축제라도 열린 듯 활기가 넘친다. 장터 주변에 많았다는 주점 가운데 옛 시절을 추억하는 곳은 이제 ‘옥산집’뿐이다.

정겨운 시골 장터인 판교5일장
◇국립생태원, 신성리 갈대밭 등도 있어

장항역에서 멀지 않은 국립생태원은 열대우림과 사막, 온대, 지중해, 극지방 등 5대 기후대의 생태 환경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아이는 물론 어른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해설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더 유익하다. 추석 당일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무료 개관하며, 제기차기와 널뛰기, 윷놀이 등 민속놀이 체험도 운영한다(추석 전날 이틀 휴관). 10월 27~29일은 개원 기념 가을생태축제 기간으로 무료 개방한다. 국립생태원과 차로 5분 거리에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장선리 친환경쌀문화센터가 있는데, 이곳을 숙소로 이용하면 편하다.

금강 하구에 넓게 펼쳐진 신성리 갈대밭
금강 하구에 형성된 신성리 갈대밭은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 좋다. 20만 ㎡에 달하는 갈대밭이 끝없이 이어지며, 어른 키를 훌쩍 넘는 갈대숲 사이로 낭만과 운치가 흐른다. 노을이 질 무렵 금빛으로 물든 갈대밭을 걷노라면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실제 이곳에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이 촬영되었다.

강둑을 따라 내려가면 금강하굿둑에 세워진 서천군 조류생태전시관에 닿는다. 3층 규모 전시관에 갯벌과 철새의 생태 관련 전시물이 많고, 고배율 망원경으로 금강에 날아든 철새를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찾기 좋다. 전시관 옆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어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하이킹도 즐길 수 있다. 연휴 기간에 입장료가 무료다(추석 당일 휴관).

희리산해송자연휴양림에서 가을 산책을 해보면 어떨까. 홀로 사색을 즐기거나 가족과 캠핑에 나서기 알맞다. 말도 살찌는 계절에 별미가 빠지면 섭섭하다. 홍원항에서 가을 별미 전어 요리를 맛보자. 매콤하고 새콤한 전어회무침과 고소한 전어구이가 여행을 맛깔스럽게 마무리해준다.

서천홍원항에서는 가을철 별미인 전어구이를 맛볼 수 있다.
◇여행메모

△당일 여행 코스= 판교면 현암리(판교오일장)→서천군 문화예술창작공간→서천군 조류생태전시관→신성리 갈대밭

△1박 2일 여행 코스=국립생태원→서천군 문화예술창작공간→서천군 조류생태전시관→신성리 갈대밭→(숙박)→판교면 현암리(판교오일장)→희리산해송자연휴양림→홍원항

△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 서천 IC→서천IC삼거리 군산·서천 방면 좌회전→대백제로→장산로→원수삼거리 우회전→장산로→물양장사거리 우회전→서천군 문화 예술창작공간

△먹거리= 판교면에 백숙 전문점 천방맛집(041-951-3396), 콩국수 전문점 진미식당(041-951-5621), 장항읍에는 춘향골추어탕(041-956-2187)과 아귀찜과 탕 전문점인 할매온정집(041-956-4860) 등이 있다.

△주변 볼거리= 장항스카이워크, 장항송림산림욕장, 국립해양생물자원관, 한산모시관,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 숲, 춘장대해수욕장, 문헌서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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